대학이 인간 신분 서열의 잣대노릇
콧바람에도 날아갈 새털처럼 가벼운 특권을 움켜쥐고 있는 자여, 이제 손을 펴고 내려놓아야

이 황당한 굿판을 언제 끝내나
- 서울 봉은사행


억새꽃과 갈대꽃이 어우러진 한강길을 따라 한참을 걸으면 영동대교가 나오고, 강둑에 올라서면 봉은사역입니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갈까 하다가 봉은사를 들렀다 가기로 했습니다. 봉은사역을 코엑스역으로 개명할 것인가를 두고 갈등이 있나봅니다. 봉은사 앞 현수막이 그 증거입니다. 봉은사에 들어섭니다. 사실 봉은사를 지나치면서 보기는 했어도 경내로 들어가 본 적은 없었습니다. 이참에 들러 보자. 승용차가 끝없이 줄 서있고 뭔 사람이 이렇게 많은지...... ?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 자리 잡고 있는 봉은사는 신라 시대 원성왕 10년(794년)에 연회국사가 창건했습니다. 조선 시대 초기의 억불승유 정책 속에서도 보우스님에 의해 불교 중흥의 주춧돌이 되었던 곳입니다. 도로 맞은편의 코엑스 자리에 승과평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스님을 선발하는 승과고시가 열렸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일입니다. 그래서 붐볐던 것입니다. 아이들은 시험장에서 문제를 풀고, 부모들은 절에서 아이들과 똑 같은 시간표에 맞추어 불공을 드리고 있었습니다. 수능일에 볼 수 있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도 문화의 한 다면이긴 하지만 마냥 좋아할 만한 일로 볼 수는 없을 듯합니다. 오히려 참담한 문화왜곡의 현장만 같기 때문입니다.
일주문 지나
대웅전 앞
오색 연등 하늘
독경 소리
석탑 도는
촛불 띠
예불시간표 = 수능시간표
(졸시, “봉은사” 전문)
아이들이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으로 일생일대의 진검승부를 치루고 있습니다. 혈기왕성한 나이에 이 힘든 격전을 준비하느라 얼마나 갑갑하고 막막했을까? 우리의 대학입학제도는 학교 교육을 받는 아이들을 옥죄는 저주입니다. 진즉에 제거되어야 마땅했는데 징그럽게도 명이 길고 긴 것을 보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도 별수 없이 이 망령에 길들어져 있음이 틀림없는 듯합니다.
1등에서 350등 대학까지 일렬로 줄을 세우고, 아이들과 부모들이 조금이라도 더 상위 줄에 있는 대학을 가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 기괴한 굿판이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한단 말인가? 매년 수천만 원의 복채를 기꺼이 지불하면서도 아이들과 부모 누구도 행복하지 않는 이 황당한 굿판을 언제 끝내야 한단 말인가?
대학이 인간 신분 서열의 잣대노릇을 하고 있음을 다 알고 있는 사실 아닌가? 그러기에 기를 쓰고 대학서열의 사다리를 한 칸이라도 더 올라가려고 무진 애를 쓰는 것 아닌가? 모든 문제의 근원이 여기에 있는데, 따라서 해결책도 여기에 있는 것인데, 저주의 근원인 서열의 사다리를 제거하면 되는 것인데, 그걸 다 알면서도 엉뚱하게 입시제도만 요리 바꾸고 저리 바꿔본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대학입시제도만을 바꿔서 될 일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대학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은 가히 혁명적인 대수술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황당한 제도에서도 이득을 보는 자들이 있고, 그들은 이 제도의 방패 뒤에 숨어서 달콤한 꿀을 빨아먹고 있으니,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온갖 궤변과 요사스런 입술로 이 굿판을 성대하게 치르도록 현혹하고 확대 재생산 하려고만 합니다. 그래서 이런 엉뚱한 제도가 마치 지극히 정상적인 것처럼 행세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금은 글로벌 시대입니다. 우리라는 이 조그만 동네에서 콧바람에도 날아갈 새털처럼 가벼운 특권을 움켜쥐고 있는 자여, 이제 손을 펴고 내려놓아야 합니다. 도대체 수십만 명의 어린 학생들이 그 비싼 사교육비를 지불하고도,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고 살아가게 만드는 이 가증스러운 못된 제도를 언제까지 용서할 것인가?
사찰 뒤 조그만 구릉 숲으로 오솔길이 가지런하게 나있고, 수북하게 쌓여있는 낙엽을 밟으며 걷는 길은 제법 운치가 있는데, 빌딩 사이로 떠나는 가을의 짧은 해가 쓰러지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