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만남이 그립다

- 북악산 길상사행

 

 

혜화문을 거쳐 북악산으로 이어진 한양도성길에 때늦은 가을비가 토닥토닥 내리기 시작합니다. 산행을 멈출만한 빗줄기도 아니고, 우중산행도 나름 운치가 있지만, 오염에 찌든 서울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를 맞으며 산행을 강행할 이유는 없는 듯합니다. 방향을 틀어 가까운 길상사에 가서 머물다가 비 그치면 다시 걷기로 합니다.

일주문 앞입니다. ‘삼각산 길상사’라는 현판이 눈에 들어옵니다. 삼각산이란 북한산의 옛 이름이고, 일주문이란 사찰에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을 말합니다. 일주문이라 부르는 것은 문의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는 데서 유래합니다. 일반적으로 가옥은 네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는데, 일주문은 두 기둥을 일직선으로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는다는 점이 다르다 하겠습니다. 일심(一心)을 상징하기 때문인데, 신성한 사찰에 들어가려면 세속의 번뇌를 불법으로 깨끗이 씻고, 일심으로 진리를 향해 정진하라는 가르침이 담겨있습니다.

경내에 들어서니 수령 300여년 된 느티나무가 지키고 있습니다. 떠나는 가을을 배웅이라도 하듯, 비에 젖은 단풍이 곱기만 합니다. 극락전 앞마당을 지나 ‘길상7층보탑’을 봅니다. 이 탑은 조선 중기(1600∼1650년)에 건립된 석탑으로 추정되는데, 지혜와 용맹을 상징하는 네 마리의 사자가 기둥이 되어 머리로 탑을 이고 있습니다. 입을 연 두 마리는 교(敎)를 상징하고, 입을 다문 두 마리는 선(禪)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진리를 깨달아 중생을 가르치라는 뜻이라 합니다. 법정 큰스님처럼.

 

법정은 2010년 3월 11일 78세로 길상사 행자실에서 입적했습니다. 청빈과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며 사신 스님이 왜 이곳에서 생을 마쳤을까? 불가의 연이었을까? 그 연을 말하기 전에 스님의 생애부터 살펴봅니다.

법정은 1932년 전라남도 해남에서 출생했습니다. 1956년 인간의 선의지와 진리를 찾아 효봉학눌의 문하로 출가한 후, 해인사 전문강원에서 대교과를 졸업하고 쌍계사, 송광사 등에서 수도했습니다.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초까지 불교사전 편찬과 불교 경전 역경에 헌신하여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1975년에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수행하다가 1992년부터는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홀로 무소유의 삶을 실천했습니다.

법정은 1994년부터 ‘맑고 향기롭게‘라는 시민 모임을 창립하여 무소유 사상을 전파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의 무소유 사상에 감동했고, 그러한 삶을 실천하는 스님을 존경했습니다. 그 중에 지금은 길상화 보살로 불리는 ’김영한(1916∼1999)‘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녀를 모신 사당과 공덕비는 길상사 경내 계곡 아래쪽에 소박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재력가의 작고 겸손한 안식처는, 이제 때가 되었다고 비에 젖은 고운 단풍마저 초연히 떠나보내려고 합니다.

길상화 보살은 16세에 하규일 문하에서 진향이라는 이름을 받고 기생이 되었습니다. 재주가 출중했던 그녀는 1937년 백석 시인으로부터 자야라는 아명을 받았고, 1953년 중앙대 영문과를 졸업한 후,『선가 하규일 선생 약전』을 저술하기도 했습니다. 1955년에는 성북동 배밭골을 사서 대원각을 짓고 특급 요리집을 운영하여 재력을 쌓기도 했습니다.

그녀가 법정을 만난 것은 1987년입니다. 그녀는 법정의 책『무소유』를 읽고 스님의 무소유 사상에 감동하여 7천여 평의 대원각 터와 40여 동의 건물을 절로 만들어주기를 청하였습니다. 1000억 원의 재산 전부였습니다. 그녀의 뜻에 따라 1997년 12월 14일 요리집 대원각은 사찰 길상사로 변신하였습니다. “1000억 원의 재산이 그 사람 시 한 줄만 못하다”는 그녀의 어록은 무엇을 함의하는 것일까? 그 사람은 그녀에게 자야라는 아명을 준 백석 시인입니다.

삶은 무수한 만남과 관계입니다. 직접적인 만남일 수 있고, 책과 예술을 통한 만남일 수도 있습니다. 요즈음 만남조차 실익을 쫓는 세태라고 무조건 나무랄 일은 아니지만, 삶의 울림이 있는 만남은 시대를 초월하여 변함없이 감동을 줍니다. 법정과 길상화 보살이 만나 무소유의 삶을 살다 갔듯이, 김영한과 백석이 만나 1000억 원보다 더 큰 시 한 줄의 사랑의 가치를 보았듯이, 만남과 관계의 터에서 핀 사상과 사랑은 시대를 초월해서 흐르고, 그러한 삶을 실천하며 사는 사람들. 그 덕분에 세상이 아름답습니다.

지천명이 중천에 떠있는 우리 또래는 젊은 시절 홍콩 영화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1980년대와 1990년대는 홍콩 느와르 영화의 전성기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들의 우상은 주윤발입니다. 그는 평생 모은 8000억 원의 전 재산을 기부한다고 공표했습니다. 그는 “돈은 내 것이 아니다. 당분간 잠시 보관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법정과 길상화 보살이 실천했던 무소유의 삶과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비리와 부패가 얼룩진 화면에 쏟아지는 것이 지금 우리시대의 인간 군상입니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가지고, 더 많은 권력과 명예를 가지고 누리는 사람이 더더더 썩은 먼지처럼 화면을 덧칠하는 세태입니다.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사람에겐 아름다운 향기가 난다는데,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기만 합니다.

“아름다운 만남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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