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아프도록 아름다운 얘기였다고

2020-11-09     강지원

 

 

"그림 편지 이제 안 쓰는 건가요?붙이고,그린 그림이 인상적이었는데...예쁜 편지였어요.바쁘신가 보네,하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계속 해주면 좋을 텐데...싶었습니다. 무기수 분이 보내주신 편지의 한 구절. 이 내용을 여러 번 읽어 보았어요. 문득 영화 쇼생크탈출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음악이 금지된 교도소에 모짜르트 [피가로의 결혼]중 저녁 바람이 부드럽게/편지의 이중창이 울려퍼지는 순간 모든 수용자들이 일제히 하던 일을 멈추고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들의 멍한 표정과 놀라는 눈빛, 부드럽고 격정적으로 가슴을 파고드는 소프라노의 이중창.

그 음악을 들으며 수용자들은 무엇을 느꼈을까요?

저는 그 순간 살아 있는 게 아름다운 일이 아닐까, 또살고 싶다는 소망이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했습니다. 가족이나 그리운 사람들을 떠올리기도 하겠지요.

 

난 지금도 그 이탈리아 여자들이 뭐라고 노래했는지 모른다. 사실은 알고 싶지도 않다. 모르는 채로 있는 게 나은 것도 있다. 난 그것이야말로 표현할 수 없고 가슴이 아프도록 아름다운 얘기였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 목소리는 이 회색 공간의 누구도 감히 꿈꾸지 못했던 하늘 위로 높이 솟아올랐다. 마치 아름다운 새 한 마리가 우리에 갇힌 새장에서 날아 들어와 그 벽을 무너뜨린 것 같았다. 그리고, 아주 짧은 한 순간 쇼생크의 모두는 자유를 느꼈다.

영화 쇼생크 탈출 중 레드의 독백

 

 

영화의 감동과는 비교가 안 되지만 제가 보낸 그림 편지가 삭막한 그곳에선 음악과 같은 느낌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림 편지를 완성하는데 꽤 시간이 걸리긴 합니다. 그리고, 오리고, 붙이고, 손이 많이 가지만 그림 편지를 보내면서 저는 무척 기뻤어요. 제 마음을 오롯이 보여주는 것 같았거든요. 가을이 듬뿍 느껴지는 그윽한 편지를 보내고 싶었는데 마음 뿐이었어요. '왜 다시 그림 편지를 보낼 수 없는 걸까?' 곰곰 생각해보니  제 마음이 간절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어요. 간절함이 이루어내는 결과는 다르다는 것을, 그것이 있고 없고의 차이를요.

이분은 편지에  "요즘 스트레스가 많고,무기수 형을 받은지 20년 째인데, 자꾸 악몽을 꾸고, 두통도 심하다고 썼어요. MRI를 찍어보려고 의료과에 신청하니 비용이 너무 비싸다고, 이런데도 내가 [하나님의 기쁨]이라니 어쩌죠?ㅠ.ㅠ 정말 하나님의 기쁨이고 싶은데 생활은 슬픔입니다,"라고.

살아가는 일이 다 그렇지 않을까요. 어디 즐거운 일만 있나요. 삶이 고해라는 말이 이해가 되죠. "생활은 슬픔입니다."라는 문장이 지그시 울음을 참고 있는 것처럼  안타까웠는데 바로 그 뒤에 "기도해주세요" 글씨를 보고는 조금 마음이 놓였어요..그래도 열심히 살아볼 테니 저를 잊지 말고 지켜봐주세요, 하는 호소로 들려왔어요.

 

쇼생크 탈출의 그 장면처럼 편지쓰는 사람들의 편지가 담장 안에 계신 분들에게  자유를 느끼는 순간이 되기를 소망해봅니다. 그 편지가 감히 가슴이 아프도록 아름다운 얘기였다고 기억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