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소래 습지에서
과거의 영광은 염부의 땀으로 남아 서리가 내린 듯 하얀 염분이 토양 속에 섞여 녹아내리고 있다.
소래 포구는 복잡한 어시장 난전 사람들의 훈훈한 냄새와 어패류와 활어의 퍼덕임으로 생동감이 넘치고 소란스럽다.
사람들을 호객하는 소리 사이를 이리저리 빠져나와 길게 이어진 바닷가 축대 옆으로 걷다가 인천과 월곳을 가로지르는 도로 밑 지하도를 빠져나오자 드넓은 소래포구습지대가 한눈 가득 펼쳐진다.
습지로 흘러 들어가는 물길이 길게 파여 고랑을 이루고 뱀의 몸통처럼 구불구불한 물길을 내며 바다를 향해 하구를 넓게 벌리고 길게 이어져 있다.
습지를 따라 오르는 말라버린 오솔길에는 갈대도 대나무도 아닌 웃자란 키가 큰 옥수수 같은 식물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날씨는 행복하고 평화롭다.
한겨울의 추위가 살짝 누그러져 봄 햇살처럼 따사롭게 맑은 빛으로 부서진다.
도시를 점령하고 있는 아스팔트 길 위만을 걷다가 곱디고운 모래가 단단하게 다져진 흙길이 사랑스럽다. 얼었던 흙의 표면이 촉촉이 녹아내려 살포시 걷는 발걸음 뒤 끝에서 사박거리는 소리를 내며 먼지 한 점 일으키지 않는다.
해풍에 실려 오는 짭조름한 갯내가 코끝에서 맴돌다 이내 무디어진 감각에 저만치 사라진다. 햇볕에 반사된 물 빠진 갯벌은 구릿빛 검은 얼굴로 번쩍이며 빛을 눈부시게 반사시키고 있다.
말라버린 갯벌 평원에 지평선 가득 끝도 없이 펼쳐진 겨울의 갈대 무리는 수분을 모두 증발해 만지면 바사삭 소리를 내며 부서져 내릴 것 같이 건조하지만 끝없는 생명력으로 땅속에 뿌리를 내리고 무리를 지어 동면의 겨울 벌판이 자신의 영토임을 부동의 자세로 과시한다.
빛바랜 모습으로 서로 어깨를 기대여 가며 갯벌 위를 진군하는 갈대의 무리는 누런 물결로 바람 따라 이리저리 출렁이며 드넓은 벌판에 끝없이 펼쳐져 있는 풍경이 되고 화선지에 파란 물감을 풀어 놓은 것 같은 하늘은 높고 푸르며 겨울의 찬 공기를 닮아 시리도록 청아하고 아름답다.
갈대숲 속에 우뚝 자리를 잡고 맑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커다란 날개를 바람이 불어오는 갈대의 소리 따라 천천히 원을 그리며 돌아가는 유럽풍의 풍차가 멋스러움을 자아내고 소슬바람 불어오는 겨울 갈대숲의 운치에 빠져 한 것 호사를 누려본다.
벌판의 여기저기에는 염전의 흔적들이 눈에 뜨인다. 염부들의 땀으로 얼룩진 수차는 누렇게 말라비틀어져 봄 햇살에 하품하는 늙은 누렁개처럼 건물 한쪽에 비스듬히 누워 졸고 있으며 한때는 수많은 소금을 생산해 내던 염전은 들풀로 한가득 넘쳐난다.
태양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한낮의 열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해풍에 마르고 햇볕에 증발하는 소금을 한 줌이라도 움켜쥐기 위해 염전 바닥을 밀고 또 밀어 소금을 채취하던 염부는 자신의 몸에서 증발하는 땀과 묻어나는 소금 입자를 털어내며 아련한 과거의 추억 속으로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살아졌다.
반듯하고 평평한 염전 바닥은 파이고 부서져 있고 염전을 구획하던 반듯한 둑은 무너져 내려 흔적만 남아 있으며 외롭게 서 있는 염전 터 표지판만 이곳이 염전이라고 말하고 있다.
염전 바닥에 깔렸던 타일들이 어지럽게 널려 수북하게 쌓여 연인들의 사랑의 징표가 되어 사랑의 이름과 하트를 그리고 있다.
폐허가 되어버린 소금 창고는 검은 기둥이 이리저리 흩어져 무너지고 과거의 영광은 염부의 땀으로 남아 서리가 내린 듯 하얀 염분이 토양 속에 섞여 녹아내리고 있다.
겨울 들판의 습지는 헐렁한 겨울바람이 불어와 흔들리는 갈대들의 술렁거림으로 가득하고 호젓하게 걷는 들풀 길의 정취는 오후의 한가로움과 삶의 여유로 나른한 행복감에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