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악산”노을 따라 저무는

성실과 삶의 진지함으로 또 다른 자아를 찾아서 묵묵히 길을 간다.

2022-12-09     이도연

 

깊어 가는 가을 새벽의 바람이 을씨년스럽게 불어오고 희미해지는 가로등 사이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나뭇잎이 한가로이 흔들리고 있다. 서해의 젖줄이 뱃길과 만나는 한강 줄기 위로 아침 햇살이 은빛 쟁반처럼 반짝이며 합수를 한다.

임진각 표지판이 보이고 들판을 가로질러 잉크 냄새 물씬 풍기는 파주 출판단지 방향으로 길을 잡아 차는 달려간다. 곧게 달리던 도로에서 사목심 삼거리로 빠져나와 임진나루터 마을을 지난다. 왠지 마을 이름이 정감 어리고 인상적이다. 국도를 따라 이어진 주변의 산맥들이 낮게 잦아들다 들녘을 이루며 한탄강 지류와 만난다.

적성 방향으로 접어들면서부터는 검은 산등성이를 고추 세우며 산맥이 가파르게 생성하다 자지러지고 산맥의 날개를 따라 목적지인 감악산 들머리가 보인다.

힘찬 구호와 함께 마지막 구호는 생략한다.

피 끓는 젊음으로 군복무 시절 구르고 뛰던 유격장이 있던 곳으로 온몸이 전율을 먼저 느낀다. 감악산 가을은 산객들의 옷으로부터 물들고 단풍은 정상에서 임꺽정봉을 지나 장군봉의 능선을 타고 흘러내린다.

산행 들머리부터 가파르게 치고 올라가는 언덕이 숨이 차다. 까마귀가 까~악 되며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산등성이를 넘는 길목에 산과 산을 가로지르는 150M의 출렁다리가 인산인해의 인파를 꾸러미처럼 꿰어 달고 있는 것 같다. 검은 심줄 같은 쇠 와이어가 드넓고 높은 공간에 중심을 잡고 매달린 사람의 몸과 마음을 함께 출렁거리며 흔들어 댄다.

이미지 제공 - 박미애 사진작가

 

가을 국화로 파주라는 영문을 화단에 만들어 놓은 것이 아득하게 보이는 다리 밑으로는 차들이 쌩쌩거리며 달려간다. 현기증 나는 출렁거림을 진정시키고 온통 너덜지대로 이어진 바윗길을 헤집으며 산행을 한다.

숲은 고요하고 녹음 사이로 소리 없이 불타오르는 단풍은 온 산을 취하도록 붉게 물들여 젖어간다. 벌써 숲 한쪽에서는 광합성 작용을 마친 단풍이 수줍게 바스락 소리를 내며 수분을 증발하며 말라 가고 있다. 정상에 불어오는 바람은 부드럽고 메마른 갈증을 동반하고 불어온다. 정상에서 달고 맛있는 시원한 물 한 모금에 목을 적시고 이곳 감악산에서 격동의 시절 남북의 치열한 역사의 현장을 기록한 표지판을 보며 울컥한 피의 현장이 뇌리를 스치며 숙연해진다.

장군봉은 기상이 있고 장군의 풍채처럼 넓고 넉넉하다. 장군봉 옆 자락을 끼고 돌아 임꺽정봉 앞에서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탁 트인 시야로 드넓은 평야가 초원처럼 펼쳐져 있고 맑게 고여 있는 저수지가 풍요롭고 아늑하게 산의 품에 의탁하고 있다.

산의 능선은 가파르고 부드러움을 반복하며 계곡으로 흘러내렸다. 노을이 발갛게 물들어 가는 한탕강의 지류는 임진강을 거쳐 기세를 불려가며 전진을 하고 부챗살처럼 펼치며 하구를 넓혀 간다. 검은 갯벌이 반짝이며 저무는 오후의 임진강은 햇살을 품어 강의 토양이 기름지게 반짝이고 갯벌 위를 헤집으며 유유자적하는 철새의 여유로움으로 강은 넓은 바다를 그리워하며 서해를 흐른다.

임진강 은빛 햇살 머금어 기울어가는 노을 속으로 떼 지어 날아가는 기러기 대열을 바라보며 어디로 인가 끝없이 날아가는 인생 여로의 아득한 행렬을 따라 시선이 머물며 오늘도 길 위에 서 있다.

오늘의 여정을 마무리하며 하루해가 또 저물어 간다. 가야 하는 길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인지 알 수는 없지만 오늘도 성실과 삶의 진지함으로 또 다른 자아를 찾아서 묵묵히 길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