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대를 아우르는 숨겨진 골목길2

인왕제색도의 배경 인왕산

2022-12-15     김무홍

 

인왕산 자락길을 지나서 계단으로 올라선다. 윗부분의 새 돌과 확연하게 대비되는 성벽 아랫돌이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었다. 성벽을 따라 구불구불하게 놓인 산길이 뜨거운 햇살에 맥을 못 추고 늘어져 있다. 성벽 아래로 무악동도시텃밭, 희망텃밭, 체육공원텃밭 등으로 아기자기한 전원 색채의 마을이 자리를 틀었다. 한때 김포에서 텃밭을 손수 가꿀 때가 불현듯 떠오른다. 어설픈 텃밭이 하나씩 자리를 잡아가면서 즐거움이 쏠쏠했던 추억들이 새록새록 감돈다.

인왕산 한양도성

인왕산의 한양도성 외부 순성길로 진입한다. 나무계단에 이어 아늑한 야자 매트가 그늘에서 한가롭게 펼쳐졌다. 다소 가파른 오르막이지만 야자 매트만의 폭신폭신한 감각이 발뒤꿈치를 통해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길섶에서 깜찍한 벌개미취 닮은 야생화 모습이 삐쭉 내민 내부 순성길로 다시 들어간다.

바람결에 하늘하늘 이쪽저쪽을 쓸어가며 춤을 추는 산죽의 응원에 힘입어 고도를 높여간다. 소나무 사이를 뚫고 치솟은 거대한 바윗덩어리 능선은 길이 되어 산객을 태우는데, 바라보는 거리에 따라 사납게 또는 부드러운 풍경으로 변신하며 새 감흥을 선사한다. 풍경이 사라지는 모퉁이에 북악산 방향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무량하게 불어온다. 착한 바람의 성화에 못 이겨 길가에서 물러나 한적한 너럭바위에 여장을 풀어 놓는다. 달포 전에 와서 나무 사이로 청와대와 서촌이 들어왔던 바로 그 자리이다. 바위 끝에 매달리다시피 한 소나무 가지는 송홧가루를 잔뜩 머금은 채 금방이라도 꽃가루를 쏟아낼 태세였고 박목월의 ‘윤사월’에서 외딴곳에 송홧가루 날리는 풍경이 바로 이곳인가 싶을 만큼 적막함이 흘렀던 곳인데, 그사이 새순은 가지로 성장하여 여름을 나고 있다.

인왕산-한양도성제공

해발 338m 인왕산仁王山 정상에 이른다. 인왕산은 해발 고도가 비교적 낮지만, 조선이 건국되고 도성을 세울 때 우백호右白虎로 삼았던 명산이다. ‘인왕산을 모르는 호랑이가 없다.’라고 할 만큼 한때 인왕산은 호랑이를 연상시켰다. 정상부는 서울 종로구와 서대문구가 경계를 그으며 함께 나눠 쓰는 만큼 너른 공간을 자랑한다. 이곳에는 다국적 사람들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흔적을 남기며 추억으로 담고 있다. 산 아래로 성곽 옥개석이 용이 살아 움직이듯 꿈틀대며 서울을 울타리로 감싸고 있는 듯하고, 내사산과 어우러진 산세가 서울 전경을 담아 한 장의 조감도로 내어준다. 1990년대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인왕산이 일반인에게 개방되자 한때 가보고 싶은 곳 중에서 첫 손에 꼽혔던 인왕산이었다. 푸른 지붕이 유난히 띈 관계로 처음 본 청와대를 한눈에 알아보고 발길이 쉬이 떨어지지 않았던 옛 기억이 새롭다.

겸재 인왕제색도

정상을 받쳐주는 거대한 암반을 휘감고 내려가면 넓고 평평하게 드러낸 ‘치마바위’에 얽힌 애틋한 사연이 기다린다. 중종이 반정으로 즉위하자 중종 비인 단경왕후 친정아버지가 반정의 반대편에 선 이유로 피살됨에 따라 죄인의 딸은 왕비가 될 수 없다 하며 인왕산 아래 옛 거처로 쫓겨났다. 중종이 조강지처인 단경왕후를 잊지 못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단경왕후가 자신이 입던 붉은 치마를 경회루가 보이는 이 바위에 걸쳐 놓고 간절함을 보였다 하여 치마바위라 부르게 되었다. 한편 겸재 정선鄭敾의 ‘인왕제색도’에서 비 갠 아침에 ‘물 머금은 중량감 넘치는 암벽’이 바로 치마바위로 추정된다. 인왕제색도는 국보 제21호로 지정될 만큼 작품이 뛰어나며 최근 삼성미술관에서 소장하다가 사회 환원을 발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