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 성벽을 완벽하게 갖춘 숙정문

숙정문은 풍수지리설에 따라 문을 열어 놓으면 음기淫氣가 침범하여 한양 부녀자들의 풍기가 문란해진다고 여겨서 사람의 출입이 거의 없는 험준한 산악지역에 문을 설치하고 길에 소나무를 심은 뒤에 출입을 막았다.

2022-09-22     김무홍

 

숙정문 전경 / 한양도성 제공

 

성곽 모퉁이를 돌 때마다 서울의 풍경이 다가왔다가 멀어지는 변화무쌍한 풍경을 자아낸다. 태양이 서쪽으로 기운 탓에 온기가 식어간 숲속에 그늘이 짙게 퍼져나간다. 숲과 산길을 가리지 않고 이리저리 헤집고 설치한 목재 데크가 산과 동체가 되어 한적하게 드러낸다. 숲의 체취를 담고 넘어온 산들바람을 온몸으로 체감하며 지나온 여정을 꼼꼼히 중간 정리한다. 시간이 물 쓰듯이 속절없이 흘러간다.

 

숙정문 부근의 한양도성 / 서울한양도성 제공

 

한양도성을 구성하는 사대문 가운데 도성의 북쪽 대문 격인 숙정문肅靖門에 도착이다. 축조 당시는 숙청문肅淸門이었다가 숙정문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도성의 문에서 좌우 성벽이 완벽하게 연결된 데는 숙정문 양쪽이 유일하다. 숙정문은 풍수지리설에 따라 문을 열어 놓으면 음기淫氣가 침범하여 한양 부녀자들의 풍기가 문란해진다고 여겼다. 그래서 사람의 출입이 거의 없는 험준한 산악지역에 문을 설치하고 길에 소나무를 심은 뒤에 출입을 막았다. 그러다가 나라에 가뭄이 들 때는 오히려 음기가 충만하도록 문을 열어 기우제祈雨祭를 지냈으며, 비가 많이 내리면 아예 문을 닫아서 음기를 막았다.

 

숙정문 광경 / 한양도성 제공
숙정문 광경 / 한양도성 제공

 

숙정문안내소로 에둘러 하산이다. 백악의 끝자락으로 향하는 계단이 가없이 곤두박질하며 여정의 끄트머리가 서서히 가닥을 잡아간다. “하늘을 난다면, 이런 기분일까.” 무겁게 짓눌렸던 발길이 날아갈 듯 홀가분하게 누그러진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일상의 칠 분의 일을 전적으로 산행에 쏟아부었다. 이제는 산행하면서 다져진 튼튼한 다리를 밑천 삼아 역사 기행을 벌이는 재미가 쏠쏠하게 자리 잡혀가는데, 이번 시리즈로 엮어 써 간 한양도성 순성길이 대표적이다. 한양도성은 작정하면 하루치 발품에 불과하지만, 한양도성이 시사하는 문화유산의 의미가 각별하고 도성의 구간마다 시시각각 차오르는 흥취가 달라 사계四季에 걸쳐 게재하는 관계로 일 년간의 이야기로 구성할 수 있었다.

 

숙정문-말바위성벽 / 한양도성 제공

 

숙정문 정문 / 한양돗

 

한양도성 걷기는 어떤 길보다 이야기 구성을 위해 생각이 또 다른 생각을 만들어 가며 각본을 연출하고 열정을 쏟아부었다. 논점 정립이 안 된 구간은 시일이 지났거나 계절이 바뀌었더라도 재차 답사해서 현장감을 얻어야만 직성이 풀렸다. 그래서 서울한양도성 기행은 특별히 애정이 더 가진다고 하겠다. 이번 기행을 계기 삼아 역사를 탐방하며 걷는 여행자의 본능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 성숙하였으면 하는 바람을 담는다. 어느덧 나를 찾아 나섰던 길이 소나무들이 두 팔 벌려 환영해주는 말바위안내소에 안착하며 공식 일정이 갈무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