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의 세상으로 - 성남행
상상의 세상으로
- 성남행
분당선 이매역 1번 출구로 나오면 성남아트센터가 있습니다. 2층 규브미술관에서 에릭 요한슨 사진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중국 우한(武漢) 폐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 여파로 이 귀한 사진전에 오신 관람객은 많지 않습니다. 이 전염병의 창궐로 우리들의 삶의 방식은 혼란에 빠져있습니다. 외출할 때 마스크를 쓰는 것은 일상의 당연한 일이 되었고, 크고 작은 모임은 취소되었습니다.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2020년 2월 7일 0시(현지시간)를 기준으로 누적 확진자는 3만1천 116명, 사망자는 636명입니다. 하루만에 3천 143명, 사망자는 73명이나 늘었습니다. 또한 이날 우한에서 코로나19 발병을 처음으로 알렸다가 처벌까지 받고도, 급속히 증가하는 전염병 환자를 돌보던 리원량(李文亮, 34세) 의사가 결국 이 전염병에 감염되어 사망하는 안타까운 소식도 있었습니다. 중국 정부가 리원량이 허위정보를 유포한다는 죄로 그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있는 동안 전염병은 순식간에 중국을 덮치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중국 정부가 그의 입을 막으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언젠가 메모장에 적어놓았던 글이 가슴을 때립니다. '몇 백 개의 허위정보를 막는 것보다 하나의 진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진실과 허위가 서로 겨루게 내버려두라. 진실이 허위와 겨루게 하라(출처 불명).'
에릭 요한슨의 사진 작품을 둘러봅니다. 그의 작품의 핵심 키워드는 상상력과 창조입니다. 그는 카메라에 사실의 세계를 담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로 상상의 세계를 창조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저는 저의 상상력에서 나온 아이디어로 이미지를 채우고 우리가 사는 세계와 흡사하지만 조작되어 있는 다른 차원의 세계로 통하는 창문 같은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사실 그의 작품은 이미 있는 현실을 조작하여 상상의 세상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이 일은 치밀한 계획적 작업이기도 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초현실주의 작품에서 가장 흔히 표현되는 것들 중 하나가 자연 풍경을 조작하는 것이지만, 그만큼 기발한 상상력과 디테일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조금이라도 어색한 부분이 있다면 그 작품은 현실적으로 보이지 않을 테니 말이다.''
어쩌면 그가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일은 특별한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는 ''나의 영감은 주변의 사물이나 '만약?'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모든 것들에 대한 의심을 품기 시작한 지점에서 아이디어가 탄생한다는 말입니다. 그는 일상에서 의미 있는 이야기를 창조해 냅니다. 그리고 아이디어를 캡처합니다. 그의 작품은 디지털 예술입니다. 그에게 있어 카메라는 도구이며, 컴퓨터는 캔버스입니다.
기술문명 변화의 영향은 예술 분야에서도 예외가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기술문명의 발달은 기존 예술을 밀어내기도 하지만, 새로운 예술 분야를 개척하기도 합니다. 에릭 요한슨의 아이디어가 구체화된 상상의 세계는 수많은 디지털 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초연결, 초융합, 그리고 지능화로 대변되는 4차산업혁명 기술의 핵심은 디지털입니다. 에릭 요한슨의 사진 작품은 단지 순간의 풍경을 담은 것이 아니라, 상상의 세계를 디지털 기술로 조작한 선구적인 예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작품을 한 바퀴 둘러보고 그냥 나올 수가 없습니다. 다시 처음 자리로 돌아가 작품을 감상하러 갑니다. 상상의 세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