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곰이여, 안녕 - 독일 베를린행 (2)
새끼곰이여, 안녕 (2)
- 독일 베를린행
다음날, 아침부터 비가 내린다. 비에 젖은 베를린은 쌀쌀하고 우울하다. 맑고 따뜻했던 어제의 날씨와는 매우 대조적이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마찬가지다. 어제는 속살이 훤히 드러나는 짧은 옷을 걸치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공원 잔디밭에서는 아예 옷을 벗고 햇볕을 받으며 누워 있는 사람들도 흔히 볼 수 있었다. 나는 이곳이 북반구 가까운 쪽에 있어서 사람들이 더위를 참지 못하는 줄만 알았다. 이 생각은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한 오해였다. 베를린은 맑은 날씨가 그리 많지 않아서, 사람들은 햇볕이 쏟아지면 어디서나 자연스럽게 옷을 벗고 일광욕을 즐긴다고 한다.
오후에 독일 국방부를 방문했다. 평화유지군 파견부대의 현지 이동형통신지휘소 기술 시연을 보기 위해서다. 평화유지군이 파견된 지역 대부분은 정보통신 기반시설이 열악하기 때문에 지형, 전염병, 환경 등에 관한 긴요한 정보를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인공위성 등 다양한 정보 매체를 활용할 수 있는 장비를 현지에 설치하여 운영하는 것이다. 시연은 빗속에서 진행되었다. 비를 맞으면서도 흐트러짐 없이 준비하고 마무리한 장병들에게 감사드린다.
시연 후 독일 국방부에서 준비한 리셉션에 참석했다. 식사를 겸한 칵테일 파티다. 음식과 음료수를 들고 다니며, 여러 국가에서 온 사람들과 대화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나는 접시와 잔을 들고 작은 원탁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맞은편에 시골 할아버지 같은 인상의 흑인 한 분이 활짝 웃으며 자기소개를 했다. 그는 키리바시 미국 대사 겸 유엔 대사라고 하며 명함을 주었다. 나는 키리바시라는 나라를 들어본 적이 없어 재빨리 인터넷을 검색했다.
키리바시는 태평양 서쪽 길버트 제도 쪽에 있는 인구 10만 명의 섬나라다.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1979년 7월에 자치권을 얻어 독립했다. 이런 오지의 나라는 정보통신 기반시설이 열악하여 현대 문명의 혜택에서 소외되고 있다. 정보통신기술도 경제력 격차와 유사하게 각국 간 '부익부 빈익빈'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유엔은 이 문제를 해소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유엔은 정보통신 빈국을 위해 다양한 지원방안을 강구하고 실천하고 있다. 대사는 혼자서 두 직위를 수행하는데 보수는 한 직위의 것만 받는다고 농담하며 환하게 웃으신다. 유머감각이 풍부한 멋진 분이다.
서울은 온종일 천둥이 치고 비가 온다고 짝꿍이 카톡을 보내왔다. 올해는 서울에도 비가 많이 오는 것 같다. 좋은 일이다. 덕분에 봄 가뭄도 해갈되고 미세먼지도 해소될 수 있으니.
일행들과 투어버스에 올라 주요 유적지 견학에 나섰다. 먼저 베를린 장벽이다. 장벽은 동독이 1961년에 서독으로 넘어가는 동독인을 막기 위해 쌓았다. 40km에 이르는 담장이었다. 이후 이 담장은 동서 냉전과 분단 시대의 상징물이 되었는데, 베를린 시민은 1989년 이 장벽을 해체했다. 그것은 곧 냉전과 분단의 종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화합과 통일의 새로운 가치의 문을 여는 것이었다. 베를린 시민은 그 가치를 시대정신으로 승화시켜 독일과 세계의 역사를 새롭게 썼다. 존경받아 마땅한 위대한 시민이다.
연방의회의사당 앞 넓은 잔디 광장은 각국의 여행객으로 붐빈다. 의사당은 1841년에 시작하여 1912년에 완공한 독일 제2제국의회 건물이었다. 이 건물은 파란 많은 독일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1933년 나치에 의해 불타기도 했고, 연합군의 공습으로 파손되기도 했다. 파괴와 복구의 시련을 극복하고 마침내 통일 독일연방의회 건물로 안착했다.
홀로코스트추모관을 찾아가는 길에 잠시 버스에서 기다려야 했다. 도로는 온통 자전거 물결이다. 인솔자가 자전거 축제가 있다고 알려준다. 누워서 타는 자전거, 수레 같은 자전거 등등 별별 자전거가 다 나와 도로를 누비고 있다. 베를린 시민들은 자전거를 많이 탄다. 어디를 가나 자전거 길이 있고 보관소가 있다. 자전거 타는 사람도 평상시의 옷차림 그대로다. 한강변 자전거 길과 같이 특정 도로에서 특정 복장을 갖추고 타는 우리나라 자전거 문화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홀로코스트추모관은 수백 개의 콘크리트 조형물이다.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지 궁금하여 관리인에게 물어보았으나 속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한마디로 보는 사람의 몫이란다. 무슨 이런 답변이 있나? 하다가 문득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홀로코스트를 한 가지 해석과 느낌만으로 말할 수 있겠는가?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수많은 눈과 생각을 가지고 산다. 그만큼 삶의 가치와 방식도 다양하다. 그것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함께 살아가는 삶의 시작이며, 중간 경로이며, 종착지가 아닐까? 홀로코스트 조형물 너머로 아직도 갈 길이 먼 해가 노을을 그리고 있다.
다음날, 독일 레지스탕스 추모관을 방문했다. 히틀러의 폭정에 저항한 사람들을 기리는 곳이다.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당은 국민선거를 통해 1933년부터 1945년 간 집권했다. 나치(NAZI)는 ‘NATIONALSOZIALISTEN(국가사회당)’에서 NA와 ZI를 따서 만든 합성어다. 독일 국민은 나치와 히틀러에게 정권을 주었지만 그들의 만행에 맹목적으로 순종하지는 않았다.
히틀러의 광기가 기승을 더하자 독일 국민은 저항했다. 저항에 참가한 사람들과 방법도 다양했다. 정치적, 종교적 신념을 공유한 단체 소속 레지스탕스는 물론, 남모르게 개인으로 활동하는 레지스탕스도 많았다. 그들은 히틀러 암살 시도와 같은 직접적인 무력시위뿐만 아니라 드러나지 않는 방법으로 암암리에 활동했다.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는 연합국의 승리이면서 독일 국민, 그들의 승리이기도 한 것이었다.
히틀러는 1939년 전쟁을 명령했다. 레지스탕스는 전쟁기간 중 히틀러를 암살하여 전쟁을 종식시키려는 시도를 끊임없이 벌였다. 그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1944년 7월 20일 히틀러 암살 음모사건이다. 이 시도는 결국 실패하여 가담자 200명이 처형되었다. 이 사건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톰 크루즈가 주연한 영화 '작전명 발키리'가 그것이다. 영화에서 톰 크루즈는 당시 실존 인물 슈타우폰버그 역을 맡았다.
한편, 나치는 유대인을 처형하기 시작했다. 유대인뿐만 아니라 유대인 작가가 쓴 책도 불태웠다. 600만 명이 희생된 대참사였다. 당시 독일에 살던 유대인은 탈출을 시도했지만 5천여 명은 탈출에 실패하고 숨어살았다. 그들의 처절한 삶은 ‘안네의 일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베를린에도 1,700여 명이 숨어 살았다. 그런데 그들을 숨겨주고 지원해 주는 독일인들이 있었다. 발각되면 처형을 면치 못하는 데도 말이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실재 인물 오스카 쉰들러와 같은 사람들이다. 추모관에서는 그들을 ‘조용한 영웅(silent heroes)’으로 기리고 있다.
페르가몬 박물관에 갔다. 베를린대성당 옆에 있는 이 박물관은 알프레트 메셀과 루트비히 호프만이 설계하여 1910년부터 1930년에 걸쳐 지었다. 이 박물관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굴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인류 최초의 문명을 꽃피웠던 수메르와 바빌론의 찬란한 유물들은 신비로움 그 자체다. 그 시대에 이렇게 현란하고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 수 있었던 사람들은 대체 누구였을까? 이 시대의 가장 혹독한 시련과 혼란을 겪고 있는 그 지역에서 살았던 그들은?
유엔 정보통신기술협력 심포지움이 공식 만찬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만찬은 저녁 7시 30분에 시작해서 9시가 훌쩍 넘어 마쳤다. 해도 이제야 노을을 만들고 있다. 위도가 높은 베를린의 하절기, 낮은 길고도 길다. 온종일 그 긴 여정을 마친 해가 고단한 발을 주무르며 잠자리를 펴고 있다. 나도 따라 잠자리에 든다. 베를린 출장의 마지막 밤에.
잠깐 눈을 붙였는가 싶었는데 벌써 날이 밝았다. 짐을 정리하고 귀국을 위해 베를린공항으로 간다. 그곳에서 파리공항을 거쳐 인천공항으로 귀국한다. 또다시 길고 지루한 여정이다. 하지만 어찌 귀향길을 고달프다 하겠는가? 내 마음보다 느린 비행기가 야속할 뿐인데.
원래 베를린은 슈프레강이 흐르는 어촌이었다. 이 지역은 슬라브계 밴드족이 살고 있었는데, 12세기에 알브레히트 곰(Bear) 백작이 들어왔다. 베를린이란 말은 그의 이름에서 따왔다 한다. 여기서 베를린이란 '새끼곰'을 뜻한다. 물론 다른 설도 있다. 이곳에 살던 원주민이 '물기가 많은 땅'을 베를린이라 부른데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유래야 어떻든 베를린은 물도 많고, 건물이나 거리 곳곳에 배가 볼록하게 나온 귀여운 새끼곰 조형물도 많다. 호돌이가 서울 올림픽의 마스코트가 되었듯이 베를린의 마스코트는 귀여운 새끼곰이다.
파리행 비행기가 베를린공항을 이륙했다. 창밖을 본다. 연초록 물감을 풀어놓은 것처럼 푸르른 베를린 풍경이 그림엽서가 되어 펼쳐진다. 그 속에서 새끼곰이 과거를 반성하고 평화를 사랑하며 건강하게 산다.
새끼곰이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