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소리길 트래킹
해인사 소리길은 국내 3대 사찰인 합천 해인사에서 주관하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팔만대장경을 수호하는 불교 문화행사의 한 구간으로서 경남 합천군 가야면 야천리에서 해인사까지 이어지는 6km 남짓의 길을 말한다.
이른 아침 충무로역, 출발 시각이 20분 더 남았음에도 좌석은 대다수 사람이 자리를 꿰차고 소리길 탐방에 대한 기대가 한껏 부푼 분위기이다. 일행을 태운 버스는 찬 공기가 만들어 낸 자욱한 안개 속을 헤집고 단풍의 남하 속도에 뒤질세라 남으로 남으로 내달려 목적지 대장금테마파크의 도착이다.
빠른 점심을 마치자마자 계곡을 바라보며 산길로 들어선다. 계곡에 몸을 담근 울퉁불퉁한 괴석과 너럭바위를 휘감으며 청아한 물길 따라 부서지는 폭포 소리, 산새 소리, 이는 바람 소리와 해인사 풍경소리가 소리길의 주역을 맡고 수백 년 묵은 송림에서 내뿜는 상큼한 향이 더해져 자연과 교감하는 고즈넉한 자연소리까지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계곡을 횡단하고 매표소를 지나면서 홍류동 계곡을 옆구리에 끼면 길은 더 멋스럽고 풍치가 달라진다. 갈수기임에도 물소리 굉음이 요란한 이유는 해발 1,430m 가야산이 품고 있는 큰 그릇에서 흘려주는 풍부한 수량 때문일 것이다. 인기 포토존에 다가가 천지가 진동하는 폭포수 장관을 기념으로 담아간다.
단풍으로 인해 계곡에 붉은 색채가 비친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홍류동(紅流洞) 계곡에는 미처 지지 못한 초록의 여운이 여전히 맴돌고 있지만, 일행들의 마음과 표정은 붉게 물든 어느 단풍보다 더 곱게 이 가을을 수놓는다.
소리길탐방지원센터, 홍류문, 길상암과 해인사 경내까지 전체 10km를 걷는데, 길상암에서 해인사까지는 무 장애길이다. 해인사 경내에 이르러 창살 틈으로만 볼 수 있는 고색창연한 팔만대장경 앞에서 절로 탄성을 자아낸다. 출발 시각까지 주어진 시간이 넉넉하여 이쪽저쪽 구애받지 않고 나만의 여유를 가지며 걷는 자유를 마음껏 누린다.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시절, 다채롭게 펼쳐지는 풍경 속에 도회지의 산물인 찌든 상념을 내려놓고, 계절이 지나는 만큼 흐르는 계곡물에 훗날 화려한 오늘을 곱씹어가며 그리워할 아름다운 추억 하나를 맡긴다. 차량도 신호등도 없는 문명의 규제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연과 교감하는 길은 가장 편안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