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예술의 발상지 서촌

뿌리 없는 나무가 없듯 역사 없는 민족은 존재할 수가 없다

2021-04-30     김무홍

 

풀과 나무 그리고 하늘까지 죄다 초록을 재촉하며 만춘의 향기로 무르익어 가고 있는 휴일이다. 반가운 얼굴들이 경복궁역 안으로 모여든다. 넉 달 만에 재회이다.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기에 반가움이 두 배로 큰 것 같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으로 쳐주는데, 그동안 만난 횟수가 얼마인가. 해가 거듭될수록 인연의 시간만큼 마음도 몸도 끈끈한 추억으로 저장되어 간다.

600년의 시간이 녹아 있는 옛 한양의 심장부 지근인 종로 사직동 일대에서부터 서촌 여정이 시작된다. 북촌이란 명칭은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라는 데에서 이름 지어졌다. 서촌은 북촌에 상대되는 개념으로 만들어졌다는 설도 있다. 어떤 혹자는 조선 시대 한양의 내산內山인 북쪽의 북악산, 동쪽의 낙산, 남쪽의 남산, 서쪽의 인왕산 아랫마을이 각각 북촌, 동촌, 남촌, 서촌이라 불렸다는 역사적 맥락으로 연관시킨다.

도심 가까이에 시민들의 휴식을 제공하는 친숙한 '사직단'으로 들어간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의 문화 말살 정책의 하나로 성역화 된 사직단을 철거해 공원을 만들어 본연의 사직기능을 상실한 채 '사직공원'으로 불렸다. 991년 사직社稷을 세우면서 처음으로 고려 성종이 사직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는 기록이 전해진 것으로 보아 인을 최고의 이념으로 하는 유교 사상과는 별개인 듯싶다.

 

이미지 제공 - 박미애 사진가

 

사직단 북서쪽에 있는 우리나라 국조國祖는 단군의 영정이나 위패 등을 모시고 봉향하는 단군성전이다. 단군에 대한 봉향은 역사적으로 국가와 민간에 의해 동시에 이루어졌다고 한다. 단군은 민족의 상징으로 단군이 승하하여 산신이 되었다는 315일 어천절과 단군조선을 건국하였다는 103일 개천절에 행사가 개최된다. 단군이 종교적 대상과 국조 등 여러 형태로 인식되는 상황에서 단군성전은 대종교, 불교 등의 종교계와 지역의 유림 그리고 학교와 개인 등에서 각각 관리 운영되고 있다.

성전 건물 색채가 궁궐이나 사찰, 일반 사당과 달리 화려하지 않다. 5천년 유구한 역사를 이어온 나라의 국조에 대한 성전치고 위상이 초라해 보이기도 하고 규모도 왜소한 것 같다. 단군성전은 수천 년 동안 별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나라에 큰 외침을 당해 환란을 겪은 후에야 단군성전을 나라의 질서를 바로잡고 민족의 자긍심을 심어준 국가의 정신적인 지주로 자리매김 하는 듯 했으나 일부 사람들은 단군의 영정과 위패를 모시고 봉향하는 행위가 특정 종교를 두둔하는 행위로 해석하는 통에 더는 발전을 못하는 안타까운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길이 느슨하게 오르막 채비로 접어들 무렵이다. 전통 활쏘기 국궁 연습장으로 유명한 등과정登科亭의 옛터 황학정에 도착한다. 사정이란 활터에 세운 정자를 말하는데, 지금의 건물은 1922년 일제가 경성중학교를 짓기 위해 경희궁을 헐면서 경희궁 내 건물들이 일반에게 매각 한 후, 사직공원 북쪽의 등과정 옛터인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때마침 다섯 궁사의 활쏘기 시위가 한창이다. 지금은 많은 스포츠와 다양한 취미가 생겨나 국궁에 대한 인기도가 떨어진 상황이다. 서양에서 들어온 양궁에 밀린 국궁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예전의 국궁은 지금과는 너무나 달랐다고 한다. 활을 쏠 때면 관중이 구름처럼 몰려와 볼거리로 흥을 제공하였으며, 측근들의 열렬히 응원하는 모습이 대단하였다고 한다. '우아한 봄바람에 회화나무 가지가 흔들린다.'에서 수형이 아름답고 깨끗한 품격을 지녀 귀하게 취급받았다는 회화나무는 사라진지 오래지만 인왕산 자락 곳곳에는 피어난 꽃들이 고운 자태를 자랑하기도 하고 연둣빛 이파리가 계절의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인왕산 자락길로 나서며 완만하고 푹신했던 길에서 다소 사납게 드러낸 오르막을 오르자 표정이 달라진다. 시간이 정오를 향해 흐르면서 고온 탓인지 하찮은 길마저 발걸음의 속도가 느려진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아카시아 향기가 콧속으로 날아든다. 올 들어 처음 맛보는 아카시아 향기이다. 나도 모르게 코 평수가 넓어진다. 계곡이 풍부한 물소리를 맡고 자란 탓인지 나무마다 5월의 푸른 변신이 뚜렷하다. 속세의 어지러운 생각을 벗어버리고 내면에 집중한다. 봄이 무르익어가며 녹음이 우거진 산길을 걷는다는 건 살아 있음의 축복이고 행복이다.

한가롭고 그윽한 물소리가 좋아 '수성동水聲洞'이라는 이름이 붙은 인왕산 수성동 계곡으로 들어선다. 전망이 탁월한 곳에 '당신의 마음이 쉬어 간다는 사색의 공간'이 있다. 조선 후기 천재 화가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에 대한 해설을 듣는다. 비가 갠 아침에 구름이 낮게 깔린 가운데 물 머금은 암벽의 중량감 넘치는 광경을 화폭에 담아낸 인왕제색도는 선생의 나이 75세에 그렸다 하니 과연 신이내린 천재화가답다. 그림의 배경이 된 이곳 수성동은 소나무 사이로 흐르는 맑은 계곡이 그려져 있는 겸재 선생의 그림은 국보 제21호로 잘 알려진 작품이다.

속된 말을 들으면 맑은 물에 귀를 씻어낸다는 성현들의 말씀을 생각하며 나도 일상의 묵은 때를 씻어본다. 곧이어 나타난 기린교는 조선 시대 태종의 둘째 효령대군과 세종의 셋째 안평대군의 옛 집터에 있던 돌다리이다. '시내가 흐르고 바위가 있는 경치 좋은 곳이라 여름한철 노닐고 구경할 만한 다리로, 기린교麒麟橋'라고 한다. 조선 후기에 들어와 영조 때 겸재 정선이 인왕산과 백악산에 걸쳐 있는 장동壯洞 일대의 경승지 8곳을 화폭에 담은 '장동팔경첩壯洞八景帖' 가운데 수성동을 묘사한 그림에도 기린교가 나타나며, 1770년경에 제작된 '한양도성도漢陽都城圖'에도 기린교가 표기되어 있다.

역사는 끊임없이 흘러 흘러간다. 뿌리 없는 나무가 없듯 역사 없는 민족은 존재할 수가 없다. 조상들이 남긴 전설을 듣고 있으면 따뜻한 어머니의 품 같은 감동이 흐른다. 지나고 나면 모두가 소중한 보물들, 그게 바로 역사가 남긴 소중한 유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