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싶은 산책길

제주의 돌담길

2020-08-24     김혜정

 

올해는 유난히 장마가 길었다.
돌일을 하는데 비, 그것도 장마의 장대비는 반갑지 않을 수밖에.

큰 돌을 각종 장비를 이용해 운반하고, 석공들의 섬세함으로 다듬은 후에도 여러가지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있다.
돌의 생김새에 따른 위치와 방향 돌 무게중심, 돌 틈사이로의 바람길, 주변환경과의 조화 등등..
이 부분에서 석공들의 기술과 연륜이 드러난다고 한다.

이렇게 공들여 정성으로 쌓아진 돌담이라야 제주의 크고 작은 태풍을 견디고.

콘크리트 건물이 대략 백 년 정도의 시간을 견딘다면, 망치 하나로 톡톡 건드리며 쌓은 돌담은 수백 년 동안 제주의 강한 비바람을 견디며 제주의 상징이 되어가고 있다.

몇 번의 사전미팅을 한 후 제주 최고의 석공임을 자타가 공인하고 자신들이 죽은 후에도  자신들이 지은 돌집이나 돌담은 그 자리를 지켜야한다는  돌에 대한 철학이 확고한 '돌빛나 돌담학교' 교장 조환진 선생님과 시인이며 석공이신 김창원 선생님을 어렵게 섭외했다.

 

 

도련감귤 나무숲 내에 걷고 싶은 산책길 돌담 쌓는 과정을 'kbs 생생정보'라는 프로그램에서 촬영을 하기로 했다.

 

공사 기간 동안 포크레인 두 대와 덤프트럭이 내는 소리,
장비 소리에 묻힐까 큰 목소리로 외치는 소리,
방송 카메라가 돌아가고 중간중간 인터뷰까지 정신이 없었다.
엄청난 무게의 돌을 이동하는 과정은 한 사람만 한순간 집중을 못 해도 한순간에 위험천만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서 장대비에 잠시 휴식을 외치고 비가 잦아들면 다시 시작하고 .

 

 

석공들과 장비기사분 그 외 조력자들께 점심식사는 물론 휴식 시간마다 나는 한라봉 주스, 호박 부침개, 단호박찜, 수박 등의 간식을 준비해서 날라야 했다.

한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가 없자 예민함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런 위험한 순간에 피디의 인터뷰 요청은 나를 더 짜증나게 했고, 포크레인 기사분의 위치 선정의 실수는 엄청난 큰 돌을 재 이동해야 하는 상황을 발생시켰다.
그 과정에서 위험할 뻔한 상황이 발생하자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함을 순간 인지할 수 있었다.

"잠시 쉬었다 해요!!"를 외치고 나무 아래 앉아 호흡 명상을 하려는데, 좀처럼 고요함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생각이 요동친다.
'지금도 충분한데  왜 돌담을 이 여름에 쌓기로 했을까?'  
후회가 밀려오고 '아무튼 가만히 있질 못하고 항상 일을 만들어서 고생을 사서 하네'라고 자책하고 있을 때, 한쪽에서 갈중이를(땡감으로 물들여서 시원하게 입는 제주의 여름 작업복)입은 시인 석공께서 땀을 줄줄 흘리며 모자도 쓰지 않고 좀 전에 자신이 쌓은 돌을 허물고 다시 쌓고 계셨다.

모자를 가져다드리며 
"쉬었다 하세요. 더운데 힘드시지요?" 라고 말을 건네는데 왜 내가 눈물이 활칵 쏟아지는지....

그 말은 내 내면에서 나에게 일어난 좀전 상황에  대한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음을 알아차리며 평안이 채워져 왔다.

그런데 대답이  뜻밖이었다.
" 아, 뭐가 힘들어유----? 사는 게 다 이런 거지.... 아, 눈물은 왜 또 흘리고 그래유---"
구수하게 늘어지는 충청도 사투리.

얍삽한 내 머리에 생각이 동시에 스친다.
'어, 이 시커먼 사나이 뭐야? 이 석공은 어쩌면 깨달음과 생활이 구별되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이 사람이 궁금해.'

동시에 잠시 잊고 지냈던 충북 제천이 고향인 대학 동기가 그리웠다. 그리고 우연히 그날 그 사내도 내게 전화를 걸어 오랜만에 그리운 목소리를 들려줬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공명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하루였다.

또 이렇게 하루 성장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수필 '걷고 싶은 산책길' 은 3부로 계획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