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도술을 부렸나 보다-안면도 꽃지~서산 간월암

2021-07-05     차용국

 

 

잠이 도술을 부렸나

- 안면도 꽃지~서산 간월암

 

 

 

워크숍을 마치고 몇몇 동료들과 안면도 꽃지 해변으로 왔다. 늘 그렇듯이 워크숍은 뒤풀이만 남고 기억된다. ATV를 타고 산길과 바닷길을 시원스럽게 달리고 나니, 스트레스를 몽땅 갈매기가 물고 가서 먼 바다에 버렸나 보다. 파도는 노을빛을 타고 화려한 귀향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도 백사장항 수협에 들러 해산물을 넉넉히 사서 차에 싣고 다시 꽃지 해변으로 간다.

 

꽃지 해변으로 어둠이 밀려오고 있다. 언덕 위에 민박집은 칠흑 같은 어둠의 띠를 두르고 우리들의 이야기를 지키고 있다. 드럼통을 뚝 잘라 만든 투박한 화로에 숱을 풀어 불을 피우고 해산물을 펼쳐 놓았다. 토닥토닥 익어가는 조개와 왕새우 냄새가 맛깔스럽다. 일단 속을 채우고 해변으로 나왔다. 폭죽을 터트려 파도에게 출석 신호를 보냈다. 칠흑 같은 어둠의 바다에서 하얀 파도가 불쑥 솟아올라 포효하며 달려와 발끝에서 부서지기를 반복한다. 처음엔 파도의 몸짓이 두렵기도 했지만 점차 익숙해지고 정겨워지기까지 한다.

 

지금의 꽃지는 내가 처음 찾아왔을 때와는 너무도 다른 풍경이다. 그때 꽃지는 지금처럼 개발된 곳이 아니었다. 해송이 울창한 숲의 호위를 받으며, 해변은 넓고 긴 모래 갯벌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갯벌에 맛조개를 잡으러 삽을 들고 의기양양 나갔다. 드디어 맛조개를 발견하고 재빨리 혼신의 힘으로 모래를 파냈지만 허탕만 치고 말았다. 맛조개가 그렇게 날렵하게 모래를 헤집고 다니는 능력이 있는지 당황스럽고 놀랍기만 했다. 그때 연신 맛조개를 낚아채는 할머니께서 맛조개 잡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소금을 살살 뿌려 잡는 재미 넘치고 신나는 그 비법을.

 

꽃지 해변은 바다가 쉼 없이 모래를 밀어 올려 쌓은 사구가 있다. 사구와 해변이 어울려 사막과 같은 모습을 연출하기도 한다. 예전엔 구불구불한 해안길이 가뜩이나 긴 해안선을 더욱 지루하고 힘들게 했다. 승용차도 없던 때라 그 길을 따라 어린 아들과 걸어서 민박집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녹초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석쇠에 조개와 왕새우를 구워 먹으며 나누었던 별 이야기는 지친 기색도 없이 지금도 늘 생생하다. 이제는 해안선을 따라 반듯한 도로가 만들어지고, 사구에는 듬성듬성 풀이 자라 있지만 꽃지는 여전히 아름답다. 추억은 사실보다 더 선명한 그림을 펼쳐 보일 때도 있는 법이다. 늘 그렇듯이 바다는 신비롭고 경이롭다. 밤이면 그 넓은 갯벌을 가득 채우고 해가 뜨면 멀리 물러나는 바다. 그 속 깊은 가슴에서 전해오는 소리를 듣는다.

 

다음날 아침, 꽃지의 해송과 사구 지대를 산책하고 백사장항 식당에 들러 아점(아침 겸 점심)으로 게국지를 주문했다. 꽃게와 묵은 김치를 넣고 푹 삶아낸 탕과 찬으로 나온 게장이 시장기와 편승하여 뚝딱 밥공기를 비우게 한다. 이제 서울로 갈 차례다. 하지만 배도 빵빵하고 서해의 신비스러운 섬들이 즐비하게 손짓하는데 어찌 그냥 갈 수 있으랴. 서울로 가는 길에 간월암에 잠깐 들렀다 가자.

 

간월암은 밀물 때면 섬이 되고 썰물 때면 육지가 된다. 서해로 떨어지는 낙조와 바다 위로 달이 떠오를 때면, 바다와 나무와 어우러진 빼어난 경관을 선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유월의 후덥지근한 오후이니 어쩌랴. 예전에 간월암은 피안도 피안사로 불리기도 했으며, 밀물 때면 물위에 떠있는 연꽃 또는 배와 비슷하다 하여 연화대 또는 낙가산 원통대라고 부르기도 했단다. 고려 시대 말 무학 대사가 이곳에서 수도하던 중에 달을 보고 홀연히 도를 깨우쳤다 하여 암자 이름을 간월암이라 하고, 섬 이름도 간월도라 불렀다고도 한다.

 

무학 대사가 도를 깨우친 곳이라 하여 섬 이름이 바꾸었다는 얘기이니 도가 있기는 있는 듯한데, 그것이 무엇일까? 도란 것이 산속이나 외딴 섬에 꼭꼭 숨어 있다가 될 성 싶은 사람을 알아보고 홀연히 나타나는 홍보석 같은 것일까? 뜬금없이 도를 생각하다 보니 졸음이 쏟아진다. 분명 잠깐 졸았을 뿐인데 서울에 도착했다고 동료가 깨운다. 벌써 서울이라니...... 잠이 도술을 부렸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