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고요를 걷다

세월은 오는 것도 아니요 가는 것도 아니다

2021-04-13     이도연

 

 

산을 오른다.

헐떡거리고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오르는 산은 때로는 온몸의 근육을 경직시키고 이완시키면 우리의 몸은 고통과 희열을 동시에 느낀다.

산이 정직한 것은 오름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반드시 오른 만큼 내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산을 오를 때의 긴장감이 혈류의 흐름을 빠르게 몸 안을 휘저어 돌면 쏟아지는 땀의 질량에 비례하여 희열은 증폭되고 배가 된다.

정상에 올랐을 때 발아래 아득히 굽어보는 산내들의 까마득하고 미세한 움직임들은 굽어보는 마음에 기고만장함의 극치를 이루며 탁 트인 시야는 세상의 모든 것을 내 것으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산 아래서의 부족함에 대리만족을 느끼며 세상을 다 품은 듯 혼자만의 오만함과 무도함을 즐기는 것도 가히 나쁘지 않다.

사사로이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산천초목의 모습에도 흥분하며 자연의 아름다움의 극치를 느끼며 감탄을 한다.

 

이미지 제공 - 박미애 사진가

 

산 아래 머물러 조아리는 발치 아래 펼쳐진 풍광을 바라보며 긴 호흡과 경이로운 만족감에 흥분해 기뻐하는 시간에도 올라온 만큼의 고통을 감내하며 반드시 내려가야 하고 발아래 두었던 모든 시선은 거두어 내려갈수록 또다시 우러러 올려다보아야 한다.

오를 때의 희열이 흥분이었다면 내려갈 때는 알 수 없는 조급함이다. 회귀 본능처럼 무언가 출발했던 지점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은 감출 수가 없다.

삶의 시간을 경영하는 과정도 내리막에서 여유로울 수 있는 마음의 도량이 필요하고 수양이 필요하다.

정상에 올라 잠시나마 산천을 경계하며 소박한 만용을 부린 것도 잠시 내리막의 강박관념은 다소 초라하다. 내리막길에서의 힘을 쓰는 것은 청춘의 힘과 노년의 힘이 다르듯 오르막하고는 사뭇 다르다.

등산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은 이구동성 이야기한다.

오를 때보다 내려갈 때가 빠르게 내려 갈수 있지만, 온몸의 하중이 아래로 쏠리며 다칠 수 있는 확률이 훨씬 높다고 한다.

오를 때의 근육은 하중을 위로 받쳐 올리며 힘으로 밀어붙이며 온몸의 근육은 대들보가 건물을 떠받쳐 올리듯 수직으로 경직하며 일어서기를 반복한다.

오를 때의 기운은 하늘을 향해 뻗쳐오르지만 내릴 때의 기운은 지면 아래 낮게 깔린다. 내려갈 때의 근육은 위에서 아래로 내리누르는 하중을 버티며 수직으로 하강을 하며 가로지르는 건물의 서까래처럼 전체적인 균형을 유지하려 한다.

내리막이 가파르고 내려오는 코스가 길수록 다리는 후들거리며 균형감각을 상실하기 쉽다.

오를 때 펼쳐지는 미지의 풍경들은 갓 태어난 어린아이의 눈에 비치는 신비하고 새로운 세상과의 조우였다면, 내리막길에서의 풍경은 추억이다. 머리와 가슴으로 기억하고 기억 속에 행복의 감정을 섞으면 좋은 추억이 되는 것이다.

오르막길이든 내리막길이든 결국은 평지에서 다시 만나고 시작은 곧 끝을 예고하는 자연의 이치이자 시간의 섭리인 것이다.

길이 시작하는 시점과 원점으로 돌아가는 종점에서 지나온 시간이 단순한 기억으로 존재하지 않고 행복하고 좋은 추억으로 남는 시간이 더욱 많이 존재하길 소망해본다.

오늘도 길 위에 서서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육신의 번민과 고뇌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내 삶의 종착역으로 한발 한발 나아가는 것이며, 세월은 오는 것도 아니요 가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내가 살아가면서 변해가는 것이므로 삶의 아름다운 변화를 위해서 살아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