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과 멀어지는 삶
플라스틱 프리 주방 만들기
일상에서 누구나 쉽게 플라스틱 제품을 이용한다. 값이 저렴하고 가벼워 사용이 편리하다는 큰 장점을 가진 플라스틱 제품의 개발은 어찌 보면 아주 큰 혁명이라고 여겨질 수 있지만 코로나19 같은 전염병처럼 우리 삶에 큰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다.
언젠가 TV에서 바다에 던진 그물에 물고기는커녕 스티로폼, 비닐봉지, 일회용 플라스틱 컵 등 해양 쓰레기들만 한가득 걸려 올라오는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고 버린 플라스틱 쓰레기의 상당량이 강이나 바다로 유입되어 해양 생태계를 파괴한다. 썩지 않는 플라스틱 쓰레기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잘게 쪼개지며 미세 플라스틱이 된다. 미세 플라스틱은 입자가 매우 작아 바람에 의해 대기로 퍼져 비와 눈에 섞여 내리고, 바다와 땅으로까지 확산되어 환경을 오염시킨다.
큰 플라스틱 쓰레기가 분해되며 생기는 미세 플라스틱도 많지만 생활하면서 쉽게 사용하는 플라스틱 칫솔, 수세미, 생수병, 치약, 세제 등에서도 다량의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되어 인간의 건강과 환경을 위협한다. 길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버려진 담배꽁초 속에도 각종 화학물질과 필터 등에 미세 플라스틱이 포함되어 있다. 미세 플라스틱보다 입자가 더 조밀한 초미세 플라스틱의 경우 공기 중에 섞여 떠다니며 인간이 호흡할 때 몸속으로 흘러들어올 수도 있는데, 몸 안으로 들어온 초미세 플라스틱은 세포의 기능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요소들을 손상시키고 독성 물질을 퍼트려 인체에도 큰 악영향을 끼친다.
플라스틱 제품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혁명에서 재앙으로 바뀌면서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한 사회적 운동 또한 활발해지고 있다. 커피숍에서 사용하던 플라스틱 빨대를 친환경 빨대로 교체하고, 대형마트나 쇼핑몰에서 흔하게 볼 수 있던 플라스틱 비닐봉지도 이제는 자취를 감췄다.
편리한 삶을 제공해주던 플라스틱과의 전쟁이 시작된 듯하다.
플라스틱이 환경을 오염시키고 나와 내 가족의 건강까지 위협한다는 인식이 생긴 후부터는 플라스틱과의 전쟁에 동참하고 있다.
집 안에서 플라스틱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공간이 어디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수세미, 세제, 일회용 비닐봉지, 일회용 랩 등을 사용하는 ‘주방’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주방에서 사용하는 일회용 플라스틱들을 다회용, 천연 제품들로 하나씩 바꿔가며 제로 웨이스트(zero-waste) 삶을 실천하고 있다.
우리 집 플라스틱 프리 주방 만들기 노하우를 소개한다.
01 천연 브러시 (천연 수세미)
제로 웨이스트 초보자에게 가장 먼저 추천하는 천연 설거지 브러시 (천연 수세미). 미세플라스틱이 쏟아져 나오는 아크릴 수세미 대신 사용하고 있다.
긴 원통 모양의 천연 수세미를 그대로 잘라 사용하는 경우도 있고 조금 더 사용이 편리하도록 납작한 사각 형태로 가공한 천연 수세미도 있다.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수세미를 사용하는 것 대신 자연의 색감이 녹아있는천연 브러시 제품들을 사용하니 눈으로 보기에도 예쁘고 건강과 환경에도 좋으니 1석 3조이다. 게다가 플라스틱 수세미를 사용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세정력까지 완벽해 1석 4조가 아닐 수 없다.
크기가 작은 편이고 사용 중 섬유질이 삐져나오는 경우가 있어 처음 사용 시에는 불편할 수 있으나 몇 번 쓰다 보면 ‘왜 인제야 천연 수세미를 사용하게 되었을까’라며 조금 더 일찍 천연 수세미를 사용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감까지 든다.
천연 수세미와 함께 사용하기 좋은 천연 브러시 제품들도 모양과 크기가 다양한 것들이 시중에 많이 나와 있다.
천연 야자수와 돈모, 마모로 만들어진 천연 브러시들은 폭이 좁은 유리병이나 냄비, 납작한 접시, 과일 등을 세척할 때 유용하게 쓰인다.
02 설거지 비누 (1종 주방세제)
주방에서 건강을 해치는 또 하나의 원인은 설거지 후 남은 잔여 세제이다. 보통 가정에서 사용하는 액상 형태의 세제는 다량의 화학 계면활성제가 첨가되어있고 세정력을 높이기 위해 미세플라스틱이 포함되어있는 제품도 있다.
화학물질로 구성된 액상 주방세제는 깨끗하게 헹궈낸 듯해도 눈에 보이지 않는 잔여 물질들이 접시에 남아 우리 건강을 위협한다. 화학 계면활성제와 미세플라스틱이 포함되어있지 않은 설거지 비누도 플라스틱 프리 주방 만들기 효자 살림 아이템이다.
천연 성분이 주원료인 설거지 비누(설거지바)에는 피부를 보호하는 천연 글리세린이 함유되어있어 고무장갑을 끼지 않고 설거지를 해도 건조하지 않고 불쾌한 세제 향도 남지 않는다. 설거지 비누는 식기류 뿐 아니라 과일과 야채까지 씻을 수 있는 1종 주방세제라 오렌지, 사과 등 껍질 있는 과일의 잔류 농약까지 말끔하게 씻어 먹을 수 있어 또 한 번 안심이다. 설거지 바는 천연 성분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비누보다 쉽게 녹고 거품이 금방 꺼지기 때문에 처음 사용 시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설거지 바가 불편하다면 천연 계면활성제로 이루어져 있는 1종 액체 세제 제품도 많이 나와 있으니 먼저 사용해 보는 것을 권한다.
미세플라스틱과 합성 계면활성제가 포함되어있지 않은 설거지 비누를 사용한 후부터 고무장갑도 자연스럽게 사용하지 않고 있다.
03 유리용기/도자기용기 사용
주방 살림 중 플라스틱 비중이 가장 높은 것은 보관 용기이다. 처음에는 값이 저렴하고 사용이 편해 플라스틱 보관 용기를 다량으로 구입해 사용했다. 처음엔 편리하게 생각될 수 있으나 조금 사용하다 보면 플라스틱 용기에 미세한 잔 기스들이 생기고 음식 베임 현상까지 발생한다.
오래된 플라스틱 보관 용기에는 각종 유기물질과 기름때가 덮여 부패하며 냄새가 나기도 한다. 설거지를 깨끗하게 해도 잘 닦이지 않고 남아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사용 중, 보관 중 발생하는 스크래치에서도 미세플라스틱이 발생한다. 플라스틱의 유해성을 깨달은 뒤로는 유리 용기와 도자기 용기를 사용한다. 무거워 불편하고 깨질 수 있는 위험성이 있지만 깨끗하게 설거지한 후 끓는 물에 열탕 소독해 반짝이는 유리 용기를 보고 있으면 마음마저 편안해진다.
고추장, 된장같이 냄새와 색이 강한 음식을 보관하기에도 좋고, 유난히 빨간 색이 많이 들어간 한국 반찬들을 넣어두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유리 용기는 미세 플라스틱 걱정이 없을 뿐만 아니라 깨지지 않는 이상 영구적으로 사용이 가능해 장기적으로는 가계 살림에도 보탬이 되지 않을까 싶다. 잼이나 각종 소스류를 살 때도 늘 유리 용기에 담긴 제품을 구입해 빈 병은 소독하여 재활용하거나 화병으로 사용하고 있다.
04 실리콘 랩, 실리콘 용기
일회용 랩도 주방에서 많이 사용하는 것 중 하나이다. 먹다가 남은 피자 조각이나 생선, 각종 음식을 뚜껑이 있는 용기에 옮겨 담아 보관하기 번거로워 간편하게 일회용 랩을 씌워 보관하는 사람이 많다.
일회용 랩도 썩지 않는 플라스틱의 쓰레기의 주범이라 우리 집 주방에서는 더는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물로 씻어서 재사용할 수 있는 실리콘 랩을 사용하고 있다. 아주 작은 종지 사이즈부터 큰 대형 사이즈까지 크기도 다양해서 비슷한 크기를 골라 뚜껑 덮듯 간편하게 씌우면 된다.
매일 새 밥을 먹기 힘들어, 미리 밥을 지어 냉동실에 얼려놓고 먹는 맞벌이 부부들이 많이 있다. 우리 집에서도 냉동실에 밥을 얼려 그때그때 데워서 먹는 편인데 그동안 플라스틱 용기에 냉동 밥을 보관하곤 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플라스틱 용기를 오래 사용하면 각종 유기물질이 달라붙어 부패할 수 있고 미세플라스틱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또 오래 사용하고 열을 가하다 보면 환경호르몬까지 다량으로 발생해 건강을 위협한다. 그 때문에 환경호르몬 걱정 없는 실리콘 용기로 밥 보관 용기를 대신하고 있다.
실리콘 용기의 가장 큰 장점은 끓는 물 열탕 소독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최고 250도, 최저 영하 40도까지 견디는 내구성이 강한 소재이기 때문에 사용 후 늘 끓는 물에 소독하여 사용하고 있다. 환경 호르몬이 검출되지 않아 유아용 젖병 소재로 사용되는 실리콘 소재도 제로 웨이스트 초보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05 자연소재 행주 사용
행주 관리를 잘 못 하면 냄새가 나고 오히려 위생에 좋지 못할 것 같아 일회용 행주 또는 키친 타올을 주로 사용했었다. 일회용 행주에도 미세플라스틱이 다량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후로 면 행주를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식사 전 식탁을 닦고, 주방 조리대 흘린 음식물이나 물기를 닦는 등 주방에서 쓰임새가 다양한 행주는 하루 동안 사용한 후 매일 저녁 설거지를 끝내고 끓는 물에 삶아서 세탁한다.
행주 전용 냄비에 베이킹소다를 한 스푼 넣고 삶은 후 물로 헹궈 널어놓으면 다음 날 아침 빳빳하고 깨끗하게 말라 있다. 새하얀 행주를 사용하는 아침마다 기분까지 좋아진다. 매일 삶아서 빨기 때문에 오염이 들 새 없이 언제나 새것 같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행주 삶는 것도 습관을 들이니 기분 좋은 하루 마무리 일과가 되었다.
면 행주는 일회용 행주보다 수분 흡수력이 좋고 여러 번 뒤집어 사용할 수 있어서 오히려 편리하다.
06 프로듀스백 사용
플라스틱 프리 주방 만들기에서 가장 큰 노력을 들인, 난이도 상등급은 바로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하지 않기이다. 냉장고에 야채나 과일 보관할 때나 각종 음식물을 담아두기 매우 편리한 일회용 비닐봉지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큰 과제였다. 일회용 비닐봉지 대신 사용할 수 있는 다회용 천 가방 (프로듀스 백)을 사용키로 마음먹은 후 동대문시장에서 광목 원단을 구입해 직접 만들어 쓰고 있다. 재봉틀이나 바느질에 능숙하다면 집에 굴러다니는 면 원단이나 입지 않는 옷을 재활용하여 만들어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천연 광목 원단으로 제작한 프로듀스 백은 바람이 잘 통해 야채나 과일 보관 시 습기가 차 금방 무르는 현상이 없고, 빨아서 재사용이 가능하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프로듀스 백을 사용한 뒤로 전통시장에서 장을 보는 일이 많아졌다. 대형마트에서는 비닐봉지나 플라스틱 용기에 포장된 식품들만 판매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용을 안 하게 되었다. 직접 만든 프로듀스 백들을 가지고 전통시장에 가서 처음 장을 봤을 땐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민망했지만 ‘비닐봉지 말고 여기에 담아주세요!’라는 한 마디에 비닐봉짓값을 빼주신다며 한 움큼 덤을 주시는 상인분들을 만났을 때, 그리고 ‘똘똘한 아가씨’라는 칭찬까지 듣고 난 후로는 어깨가 으쓱해져 비닐봉지 없이 장보기에 대담해졌다. 애호박같이 처음부터 비닐에 씌워져 나오는 야채는 어쩔 수 없이 비닐을 집으로 들여야 하지만 과일이나 상추, 고구마, 감자 같은 것들은 흙만 대충 털어 프로듀스 백에 담아서 가지고 온다.
작은 크기부터 큰 대형 사이즈까지 넉넉하게 제작한 프로듀스 백은 장을 볼 때는 물론 식품을 보관할 때도 유용하게 잘 쓰인다.
편리함에 속아 끊임없이 사용하고 있는 플라스틱들은 우리 삶을 위협하는, 어찌 보면 전염병과 같이 무서운 재앙으로 다가올 수 있다. 독일의 한 매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세계 모든사람들이 평균적으로 매주 5g의 미세플라스틱을 흡수한다고 한다. 일상 속 가득 쌓여 자연환경과 건강을 위협하는 플라스틱의 유해성과 심각성을 지금부터라도 인식하고 조금씩 바꿔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작은 노력이 습관으로 변하고 그 습관이 모여 깨끗한 지구를 만드는 데 보탬이 될 수 있다. 제로웨이스트 삶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자이지만 주변 사람들에게도 알리고 지속적해서 동참하여 큰 효과가 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