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500살 넘게 살 수 있다니
현대과학은 노화를 극복할 수 있을까?
성경 속에는 900살 이상 사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무드셀라가 969살까지 살아 최장수 인물로 되어 있습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은 930살까지, 노아의 홍수로 유명한 노아는 950살까지 살았다고 합니다. 노아의 홍수 이후에는 인간 수명이 급감하기 시작해 유대인과 아랍인의 조상으로 알려진 아브라함은 175살을 삽니다. 노아의 홍수가 인간의 수명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노아의 홍수가 환경을 파괴해 인간의 수명이 단축되었다고 현대식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독교 신자와 비신자들 사이에 논란 많은 수명에 관한 성경 속 기록이긴 하나, 장수를 바라는 인간의 마음이 담겨있는 기록이라고 보면 무난할 것 같습니다.
불교에서는 죽음을 자각하고 깨달음에 이르자고 가르칩니다. 29 세의 싯다르타는 어느 날 마부 찬다카와 함께 궁을 나섰는데, 뜻하지 않게 궁궐 동문에서 너무나 볼품없는 노인을 보고 큰 충격에 빠집니다. 남문에서는 병든 자를 보고, 서문에서는 죽은 자를 실어나르는 상여를 보고, 마지막으로 북문에서는 기품있게 사는 사문들의 모습을 보고 출가를 결심합니다. 싯다르타가 궁궐의 네 문에서 본 사문유관(四門遊觀)은 불교의 핵심 사상인 고집멸도(苦集滅道)의 근간이 됩니다. 장수를 바라는 마음이 불교에서는 해탈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에서는 장수에 대한 열망이 도교의 선도(仙道-神仙術)로 발전했고, 이 신선도가 육조 시대(六朝時代:300∼550)에 한국에 본격적으로 유입되었습니다. 머리가 허연 신선들이 수백 년 심산유곡에서 유유자적하며 사는 모습이 이상형으로 많이 그려졌습니다. 무릉도원입니다. 장수에 대한 욕구가 신선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장수를 가장 우둔하게 탐한 사람은 기원전 259년 태어나 기원전 210년에 사망한 진시황입니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황제이지만 많은 기행을 해 역사 속에서 다양한 평가를 받는 분입니다. 기원전 213년에는 진나라의 역사와 의술, 농경 등에 관한 책 이외의 책들을 모두 불태워버린 분서(焚書) 사건이 있었고, 그다음 해에는 460여 학자들을 생매장한 갱유(坑儒) 사건을 자행하기도 했습니다. 이 둘을 합쳐 분서갱유(焚書坑儒)라고 하며, 진시황 악행의 대표적인 사례로 삼고 있습니다. 갱유는 불로장생의 약을 가지고 오라 명받은 신하 후생과 노생이 도리어 시황제를 비판하며 도망쳐 버려 발생했다고 합니다.
진 시황은 불로장생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다른 신하 서복(徐福), 또는 서불(徐巿)로 알려진 사람에게도 불로장생을 위한 영약을 구해오라고 했는데, 기원전 210년 그는 두 번째로 약을 구해 떠난 후에는 다시 진시황 곁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서복은 60척의 배에 3,000명의 동남동녀와 각각 다른 분야의 장인들을 포함해 5,000명의 거대한 일행과 여행했다고 하는데, 그의 행적은 한국을 거쳐, 일본까지 폭넓게 이어진 것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제주 서귀포가 제주에서 불로초(不老草)를 구한 서복이 ‘서쪽(西向)을 향해 귀로(歸路)에 오른 포구(浦口)’라는 뜻을 딴 이름이라는 주장도 있다고 하니 진시황의 불로장생에 대한 미몽에서 시작한 여행이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2,200여 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중국 시안에 있는 진시황릉 주변의 병마용갱은 1974년 농부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었는데, 그 규모와 조각상들의 세밀함이 어마어마합니다. 만리장성 건설도 진 시황이 시작했습니다. 진시황의 부와 권력은 엄청났습니다. 그러나 진시황도 50년이란 짧은 생을 살고 결국 사망합니다.
장수라고 하면 나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는 나이가 약 1,100~1,500살로 추정되며 높이 42m, 밑동 둘레가 15.2m로 한국에서 가장 나이가 많고 키가 큽니다. 조선 세종 때 당상관(정3품)이란 품계를 받을 만큼 중히 여겨져 오다가, 현재는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습니다. 오래 살다 보니 이 나무에 다양한 전설도 얽혀있습니다. 통일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의 아들인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다가 심었다는 전설도 있고, 의상대사가 사용하던 지팡이를 꽂아 놓았더니 나무가 되었다고도 합니다. 톱을 대면 그 자리에서 피가 났다는 이야기, 나라가 위험에 빠질 때마다 소리를 내어 알렸다는 전설, 정미의병(1907) 항쟁 때 일본군이 용문사에 불을 질렀는데 이 나무만 타지 않았다는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범접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래 사는 나무를 대대손손 보며 장수에 대한 염원이 용문사 은행나무에 투영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산 나무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화이트마운틴에서 5,000년을 산 브리슬콘 소나무(피너스 롱가이바)라고 합니다. 100년 살기도 힘겨운 인간으로서는 5,000년이란 세월은 너무 아득해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청동기 문명이 꽃피었을 무렵에 이 나무가 생을 시작했다고 하니, 그저 경외감만 들 뿐입니다.
이렇게 오래 사는 나무들을 보면 100년 살기도 힘든 인간의 한 생은 하루살이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짧은 인생에 애달픈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90-100년을 살게 된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닙니다.
한국 국민의 평균 수명은 1900년대 20세 정도였는데, 1970년 61.9세, 1980년 65.7세, 1990년 71.3세, 2000년 76.0세, 2010년 79.6세, 2012년 81.4세 꾸준히 늘어났고, 2030년에는 83.1세, 2050년 86.0세로 추정됩니다. 조선 역대 왕들의 평균 수명이 47세라고 하니, 100세 시대를 목전에 두고 있는 현대 한국인은 복 받은 분들입니다.
서양인들도 1900년대까지는 오래 살지 못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의 평균 수명은 19세, 로마인 28세, 16세기 유럽인도 21세를 넘지 못했고, 1900년 미국인 평균 수명은 47세입니다. 인간이 오래 살기 시작한 것이 20세기 들어서부터입니다.
인간 수명이 이렇게 늘어났다고 해도 얼마 전까지는 인생 100년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겨져 왔습니다. 인도네시아 투리나 할머니가 157세 이상 살고 있다는 비공식적 발표가 있기는 하지만, 프랑스의 잔 루이즈 칼망(1875년-1997년)이 122세를 살아 공식적으로 역사상 가장 나이가 많은 인물로 많은 이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습니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는 100세 인생이 일반적인 현상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100세 이상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1990년 459명이었는데, 2010년 1,835명, 2015년 3,159명, 2017년 3908명을 기록해 1990년에 비교해 8.5배 증가했습니다. 보건복지부 발표에 의하면 훨씬 많습니다. 2018년 100세 이상 18,505명, 2019년 18,964명으로 발표되었습니다.
지구촌 100세 인구도 매년 급증하고 있습니다. UN이 발표한 인구통계에 따르면 1990년 9만 명에 그쳤던 100세 인구는 2015년 43만 명을 달성했는데, 2030년엔 그 수가 100만 명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합니다.
과학적으로 예측되는 인간의 수명은 얼마나 될까요? 오스트레일리아 분자생물학자 벤저민 메인(Benjamin Mayne)은 인간의 수명은 38년이고 주장합니다. 지금은 멸종된 데니소바인과 네안데르탈인의 수명은 37.8년이었다고 하니, 현생인류의 자연수명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침팬지의 수명도 39.7년이라고 합니다. 지금 100세가 일반화된 것은 의학기술의 발달과 생활양식의 변화 덕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노화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연구결과가 축적되면서 노화를 바라보는 과학자들의 시선이 급격히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인으로서 텍사스주립대 교수이신 유병팔(劉秉八) 박사님이 쥐에게 식사량을 40% 줄이니 수명이 급격히 늘어났다는 결과를 보고한 이후 소식과 장수에 관한 연구는 매우 많이 되어 현재는 장수하기 위해서는 적절히 소식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과식, 특히 탄수화물을 먹으면 분비되는 인슐린이 장수의 적이라는 점은 잘 규명되어 있습니다. 당뇨병 환자들이 유념해야 할 사항입니다.
소식이 좋기는 한데 손쉬운 방법은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좀 더 손쉬운 방법을 찾아주기 위해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런 연구를 하는 대표적인 과학자가 하버드 의대 싱클레어 (David Sinclair) 교수입니다. 이분은 레스베라트롤(resveratrol), 당뇨병 치료약 메트포르민 (Metformin, AMPK 활성제), 니코틴아마이드 아데닌 다이뉴클레오타이드(영어: nicotinamide adenine dinucleotide, NAD) 전구물질인 NMN을 함께 복용하면 노화를 늦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다시 젊어지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2003년 최고의 학술지인 네이쳐(Nature), 사이언스(Science)에 논문을 발표한 이래 최고 권위 있는 학술지에 논문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으니 이분의 주장을 그저 엉터리라고 판단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현재 미국에서는 NMN를 영양보충제로 판매하고 있습니다. 위 3가지 약재를 섭취하며 자신의 몸 상태가 어찌 변화하는지에 대해 관찰하고 이 약재들이 노화 억제에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는 의사들도 많이 있습니다. 싱클레어 교수는 앞으로 인간이 500년 이상 살 수 있다고 주장하여 많은 사람이 미소짓게 합니다.
17세기 독일의 화학자이며 의학자인 리바비우스(Andreas Libavius)는 젊은 혈액이 늙은이를 회춘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젊은이의 동맥과 늙은이의 동맥을 연결한 후 노화 방지연구를 했습니다. 불행히 당시에는 혈액형에 대해 알지 못했기 때문에 혈액형이 일치하는 사람들을 적절히 고르지 못했고, 그 결과 이 시술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교황은 결국 수혈 금지령을 내렸습니다. 1,900년 오스트리아 의학자 카를 란트슈타이너(Karl Landsteiner)가 ABO식 혈액형을 발견해 안전한 수혈이 가능해졌습니다. 2,014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와이스 코레이(Tony Wyss-Coray) 교수가 리바비우스가 시도했던 방법을 그대로 따라 혈액형이 일치하는 젊은 쥐와 늙은 쥐의 혈관을 하나로 연결했고, 이 결과 늙은 쥐는 젊어지고, 젊은 쥐는 늙게 되는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이후에도 이런 연구를 지속해 결과를 최고의 학술지에 계속 발표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비록 소규모이긴 하지만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젊은 사람 혈액이 치매 등 뇌 질환에도 좋은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이런 연구가 처음에는 많은 비판을 받았으나 이제는 학계에서도 젊은 혈액의 효과를 인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 우리나라 부유한 노인들이 젊은 여자들을 첩으로 데리고 살며 노화를 늦추고자 하던 일들이 생물학적으로는 근거가 있어 보입니다. 물론 현대에서는 허용될 수 없는 일이지요.
결론적으로 노화를 억제하고 오래 건강하게 장수하자는 인간의 열망은 많은 결실을 보고 있습니다. 조만간 100세 인생이 보편화 될 것입니다. 노화를 치료하는 약물 개발도 눈앞에 있습니다. 이런 장수의 시절에 어떻게 자기 삶을 보람있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철학적 질문이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육체가 오래 산다고 다 좋은 일은 아니니 또 다른 깊은 고민이 찾아옵니다. 이래저래 인생이란 번민과 번민 사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그 사이에서 곡예 하며 살아가는 것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