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영혼들이여 - 청계산행
젊은 영혼들이여
- 청계산행
설 연휴 첫째 날, 흐리고 쌀쌀한 날씨인데도 신분당선 청계산입구역 2번 출구는 여전히 등산객으로 붐비고 있습니다. 고향을 찾아 지방으로 떠나는 사람들로 기차가 만원이고, 고속도로가 주차장처럼 변해도 수도권 인파는 여전히 많은가 봅니다.
원터골에서 산행을 시작합니다. 원터란 조선 시대에 원이 있었던 자리를 말합니다. 원은 공무 수행 여행자를 위하여 교통의 요충지에 둔 역입니다. 계곡물이 맑아 청계산이라 했으니, 지친 여행길 쉼터로 딱 맞는 곳이었으리라.
언제부터인가 설과 추석 명절이 되어도 고향에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내 고향은 대전시 유성구 죽동입니다. 예전에는 낮은 야산 아래 100여 호 정도의 마을이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농사를 지었고, 대전으로 일을 보러 가려면 신작로까지 30여 분 들길을 걸어 나와야 버스를 탈 수 있었습니다. 뒷동산과 마을 앞, 들을 적시며 흐르는 개울이 있는 전형적인 시골마을이었습니다. 내가 서울에 직장을 다니게 된 후에도 수년 간 그때의 모습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곳에서 어머님이 촌가를 지키고 계셨습니다. 산자락에 거친 밭이 있고 조상들의 산소도 있었습니다. 나도 수년 간 명절이 귀향 대열 속에 있었습니다.
진달래능선을 오릅니다. 여인의 한과 슬픔이 꽃잎에 닿아 붉은색이 되었다는 진달래꽃. 그래서 꽃말이 '이별의 한'이라고 합니다. 계단을 터벅터벅 오릅니다. 1400개가 넘는 계단으로 이어진 길은 오르는 것은 유쾌하지 않은 걷기입니다. 살짝살짝 지루함이 스쳐갑니다. 산길은 역시 자연스럽게 굽은 길을 오르내려야 제멋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서울 주변의 산길은 찾아오는 사람이 하도 많아 그대로 두어선 심한 훼손에 남아나지 못 할 것입니다. 산도 인간의 보호를 받아야 견뎌낼 수 있는 세상입니다. 그러니 계단을 산 보호대라 치고 즐겁게 걸어가자.
수년이 흐른 지금, 내 고향 죽동은 아파트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습니다. 어린 시절 뛰놀던 뒷동산은 깎여 평지가 되었습니다. 산자락에 있던 조상님들의 산소는 대전시립묘지 납골당으로 이장을 했습니다. 어머님도 마을을 떠나 유성 시내로 이사를 했고, 함께 자란 친구들도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연고가 없어지자 고향에 갈 일이 없어졌습니다. 이제 그곳은 내게 낯선 곳이 되었습니다. 사람 없는 고향은 이미 타향입니다.
내 고향 죽동에 가서 보았네
대나무 활을 들고 놀던 아이도
개울에 멱 감던 소몰이 소년도
떠나갔다네
내 고향 죽동에 가서 보았네
바람에 긴 꼬리 흔들던 가오리연도
그물에 걸려들던 송사리 떼도
볼 수 없었네
산 구릉 깎아 덮어 정돈된 논밭에는
기적처럼 하얀 빌딩 쑥쑥 자라고
흙먼지 풀풀 날리며 골목길을 돌아온 바람도
방문증 받아야 들어간다네
무심한 세월에 강산이 변한다고 했던가
지형마저 바뀐 평탄 마을
등고선이 사라진 마을 어귀에서
낯설고 낯선 내 고향을 보았네
(졸시, 내 고향을 보았네, 전문)
옥녀봉을 거쳐 돌문바위를 지나 오른쪽으로 오십 미터쯤 걸어가면 특전용사충혼비가 쓸쓸하게 서 있습니다. 비석에 눈이 쌓이고 있습니다. 어찌 그냥 갈 수 있으랴. 고개 숙여 묵념. 1982. 6. 1. 특공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던 용사들을 비롯한 53명의 군인이 이곳에서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산화했습니다. 꽃다운 청춘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순국한 젊은 영혼들. 설이 되어도 이들은 고향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들을 기다리는 부모형제들은 뼛속까지 채우고도 넘쳐나는 한을 묻고 어찌 살았을까? 분단의 비극은 이 평온한 산중에도 남아 눈보라를 맞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이들 젊은 영혼들은 고향으로 돌아갔어야 했습니다. 부모형제, 친구가 있는 고향으로.
맑은 물이 흘러 청계산이라 했다
푸른 용이 승천하여 청룡산이라 불렀다
추사 김정희가 한때
초당을 짓고 살았다는 옥녀봉을 지나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평화로운 산길
손을 내밀면 저 들 건너 관악산이
산뜻하게 인사하며 달려오는데
돌문바위 옆길을 쓸쓸히 지키는
특전용사충혼비 어깨 위로
하염없이 쌓이는 눈
어찌 그냥 지나갈 수 있으랴
고개 숙여 묵념
꽃 같은 청춘의 꿈을 피워보지 못하고
산화한 젊은 영혼들이여!
뼛속까지 채우고도 넘쳐나는 한(恨)의 눈물은
쉼 없이 쏟아지는 눈이 되었다
(졸시,「젊은 영혼들이여」전문)
매바위와 매봉을 거쳐 망경대를 지나 옛골로 내려옵니다. 눈은 멈추었지만 내린 흔적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도 판도라의 밑바닥에 희망이 남아 있듯이 나는 소망합니다. 이제는 젊은이들이 적대적인 분단의 정치 비극에 의해 희생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6.25전쟁의 참혹한 기억이 다 아물지도 않았는데, 연평해전과 천안함 피격 등등, 다 나열하기도 부끄러운 수많은 사건으로 젊은 영혼들이 희생되었습니다. 우리는 희생 장병들과 그 가족 앞에 평화를 다짐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다시는 젊은 영혼들이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할 수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