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용산에 연꽃이 피면 - 양평 부용산행
부용사는 돔형 지붕이 있는 독특한 건축물 연꽃봉오리 모양으로 지은 절
부용산에 연꽃이 피면
양평 부용산행
양수역에서 내리자 맑고 깨끗한 봄빛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햇볕이 싱그럽고 달달합니다. 용담터널 앞 약수터에서 물을 한 잔 받아 마시고 산을 오릅니다. 작고 아담한 연꽃 같은 산. 수만 년 낙엽이 쌓여 흙이 되고, 그 위에 잣나무와 상수리나무가 생사윤회를 거듭하며 비옥하게 가꾸어 놓은 순한 산. 그 아래에서 남한강과 북한강이 옥토를 실어와 풍요로운 들을 만들고 연꽃을 피웠습니다. 이 땅에 터 잡고 사는 사람들은 맑은 강물에 비친 푸른 산의 자태가 마치 연당(蓮堂)에서 얼굴을 마주 보는 것과 같다 하여 부용산이라 불렀습니다. '부용(芙蓉)'이란 '연꽃'을 말합니다.
두물머리로 모여드는 두 강의 물길을 두 눈 가득 담고 걷는 길. 먼저 하계산에 오르면 북한강 너머로 운길산, 예빈산, 예봉산이 나른히 줄을 서서 봄빛을 받고 있습니다. 아직 언 강물은 다 풀리지 않아 하얗게 떨고 있는 듯해도 어찌 상심하고 걱정할 일인가? 때가 되면 강물도 흐르고, 들꽃도 피고, 연꽃도 피는 것을. 어찌 초조해 할 일인가? 기다리면 되는 것을.
정상으로 가는 길은 남한강을 바라보며 걷는 남향 길입니다. 마른 나무는 어느새 새싹을 살짝 내밀며 새 생명의 당찬 여정을 다지고 있습니다. 남한강 건너 검단산 위에 걸터앉은 해가 봄빛을 마구 쏟아 붇고, 강물에 튕겨져 나온 싱그러운 오후의 햇살이 눈썹을 때리고 지나갑니다. 문득 바라보는 남한강변에는 봄빛이 흐드러지게 뛰어다니고, 힘차게 달려가는 라이딩 무리들의 생기가 가득합니다.
정상(366m)에서 아담한 연꽃봉오리 표지석이 지친 손님을 해맑게 맞아줍니다. 작은 표지석이라고 그 속마저 작겠는가? 이곳에 부용산성이란 작은 성이 있었습니다. 넓고 비옥한 땅 양평 지역에는 이런 작은 산성이 여러 곳에 있습니다. 함왕산성, 파사산성 등등. 이런 작은 산성은 전란이 발생했을 때 임시적인 피신과 방어의 역할을 했습니다. 풍요로운 이 땅에도 부침은 많았다는 증표입니다. 어쩌면, 풍요로운 땅이었기에 더 많은 애환을 겪어야 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잃을 것이 많고 지킬 것이 많다는 것은, 역으로 가져갈 것이 많고 빼앗아갈 것이 많다는 것이기도 하니까.
임진왜란 때, 이 산성은 지금의 이포보 근처(개군면 상자포리)에 있는 파사성(婆娑城)과 연합하여 북한강을 지켜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터만 남아 있고 그나마 낙엽에 덮여 당시의 결의와 용맹의 기록을 마주 볼 낯이 없습니다. 성터가 있었다는 것도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을 정도로 허물어져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옛날의 흔적을 엿볼 수도, 그날의 기상을 얘기하기에는 너무도 초라하기만 합니다.
하산 길에 부용사에 들렀습니다. 부용사는 돔형 지붕이 있는 독특한 건축물입니다. 연꽃봉오리 모양으로 지은 절입니다. 부용사에서 바라보는 남한강변은 진경산수화입니다. 역사의 중심에서, 지금 또 새 역사를 만들며 쉼 없이 도도하게 흐르는 한강. 강길을 걷는 것은 한강의 깊은 품에 차곡차곡 쌓아온 이야기를 듣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 찬란한 서사시를 찾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배낭을 메고 걷는 길은 언제나 행복하여라!
부용산 입구 약수터에서
쪽박 하나 가득 받은
맑은 물 위로
눈부시게 햇살이 솟아오르고
뒤질세라 뛰어드는
깨끗한 봄빛
오르는 산길마다
달곰한 연꽃 향은 피어
지친 심신을 애무하는데
하얗게 떨고만 있는 언 강은
언제나 몸을 풀고
꽃을 피우나
두물머리 푸른 물에
긴 동면의 얼굴을 씻고
부용산이 고개를 들면
내 마른 가슴 한편에도
참회(懺悔)의 눈물은 고여
뜨겁게 연분홍 꽃은 피겠지
기다림의 흐느낌도
세월의 상흔(傷痕)도
달래고 감싸며
소박한 추억의 자리에서
아담한 꽃으로 피겠지
부용산에 연꽃이 피면
(졸시, 부용산에 연꽃이 피면,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