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만 바쁘다 - 인천행

2021-01-20     차용국

 

 

 

 

마음만 바쁘다

- 인천행

 

 

 

동인천역 1번 출구(연안부두, 자유공원 방향)로 나와 길 건너 우현로를 걸어갑니다. 날씨는 쌀쌀하지만 언 길이 녹고 있는지 축축합니다. 가끔 바람은 불어오지만 세차지는 않아 그리 춥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다행입니다.

 

즐비한 상가 너머로 100여 년쯤 되어 보이는 붉은 벽돌로 쌓은 건물이 보입니다. 기독교 대한감리회 인천 내리교회입니다. 교회 문은 잠겨 있고, 현관 앞에서 3인의 흉상이 반갑게 길손을 맞이합니다. 아펜젤러, 존스, 김기범입니다. 아펜젤러 부부는 1885년 4월 5일 제물포에 도착해서 1902년 6월 11일 순직하기까지 교육과 선교의 초석을 놓았습니다. 존스는 20세인 1888년 5월 14일 제물포에 첫발을 들인 후 내리교회를 거점으로 교육, 선교, 행정, 출판, 이민, 학술 연구 등에 매진하여 업적을 남기고 1911년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김기범은 1901년 5월 14일 한국 최초로 목사 안수를 받고 한국적 교회의 반석을 열었습니다. 정리하면 아펜젤러는 씨앗을 뿌렸고, 존스는 김매고 물을 주었으며, 김기범이 그 열매를 한국에 토착화하여 목회의 서장을 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현로 건너편에 용동큰우물먹거리가 있습니다. 아직 점심을 먹기엔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거리는 한산합니다. 가천대 부속 동인천길병원(길한방병원)이 보입니다. 그 앞에 용동큰우물이 정자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이 우물은 원래 자연 연못이었던 것을 1883년에 지름 2.15미터, 깊이 10미터의 우물로 조성했습니다. 우물 내부는 자연석과 가공된 돌을 둥글게 쌓고, 지상 윗부분은 원형 콘크리트관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위를 우산처럼 받치고 있는 육각형 정자는 1967년 우물을 보호하기 위해 건립했다고 합니다. 현판은 인천 출신 서예가 동정 박세림이 썼습니다. 지금은 우물을 사용하지 않지만 예전에는 이 우물을 중심으로 권번, 병원, 양조장, 술집 등이 즐비했다고 합니다.

 

큰우물 옆에 한국 미학의 선구자라는 찬사와 일제 식민 잔재라는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는 우현 고유섭의 비가 서 있습니다. 고유섭은 1905년 2월 2일 이곳 용동(현, 동인천길병원 자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인천공립보통학교(현, 창영초등학교)와 보성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경성제국대학에 들어가 미학과 미술사를 전공했습니다. 그는 석탑과 청자 연구를 체계화했고, 불모지였던 우리의 미술사와 미학을 학문으로 발전시키는 데 공헌하였습니다. 그는 조선의 미를 '일상생활과 결합한 기교를 부리지 않은 기교, 아무런 계획을 세우지 않은 계획'으로 보았습니다.

 

신포문화의 거리를 걷다가 신포국제시장으로 들어갔습니다. 닭강정 가게에 긴 줄이 늘어서 있습니다. 이곳에 오니 비로소 북적북적하는 인파와 날렵하게 음식을 만드는 손놀림처럼 생동적인 삶을 볼 수 있습니다. 차이나타운 방향으로 가는 길가는 구한말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 옛 건물이 즐비하게 서있습니다. 한국근대문학관도 그 중에 하나입니다. 역동적인 삶이 있고, 가까운 바다가 있는 개항지에 어찌 예술가와 문학가들이 그냥 지나칠 수 있었겠는가? 춘원 이광수를 비롯한 당대의 문인들이 이곳에 들렀습니다. 그래서 인천은 개항문화의 본향이라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오후가 되자 날씨가 풀리니 걷기에 딱 좋습니다. 차이나타운타운에서 송월동 동화마을 길목을 샅샅이 살피고 다니면서 배고픈 것도 깜박 잊었는데, 공화춘이란 상표 앞에서 문득 점심을 걸렀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사실 이 공화춘은 원래의 공화춘이 아닙니다. 원래의 공화춘은 지금 짜장면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공화춘은 1908년부터 산동회관을 운영 중이던 우희광이 1912년 손문이 중화민국을 건국하자 산동회관을 바꿔서 부른 상호입니다. '공화국에 봄날이 왔다'는 뜻입니다. 하얀짜장을 먹기로 했습니다. 평소에 즐겨 먹는 짜장면과 약간 다른 맛이지만 맛있습니다. 나는 짜장면을 무척 좋아해서 언제 어디서나 맛있게 먹을 뿐만 아니라 색다른 짜장면 메뉴를 보면 꼭 맛을 보아야 배가 부르니 어쩌랴.

 

자유공원으로 갑니다. 먼저 한미수교100주년기념탑을 봅니다. 한미수호통상조약은 1882년 5월 22일 조선의 전권대사 신헌과 미국의 전권대사 로버트 윌슨 슈필드가 제물포 화도진 언덕에서 체결했습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82년 12월 14일 이 탑을 세웠습니다. 중앙에 손가락을 건 약속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인상 깊게 다가옵니다. 한때 철거 논란이 있었던 맥아더 장군 동상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1957년 9월 15일 조성했으니 벌써 60년을 이렇게 서있습니다. 전쟁은 1953년에 휴전했으니 장군의 동상보다 더 지났건만 우리는 여전히 남북, 남남, 좌우, 진보 등등 이념의 대립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망령은 언제나 우리 곁을 떠날까? 욕심 같으면 월미도로 달려가고 싶지만 벌써 어둠이 내리고 있습니다. 휴일 여행가는 늘 이렇게 마음만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