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로 가는 숲

2021-01-11     이도연

 

코로나 백수 즉 실직자가 되었다.

시간이 지루할 줄 알았지만, 예전보다 더없이 바쁘고 일주일이 언제 가는지 모르게 바람처럼 내달린다.

백수가 시간 관리 잘못하면 과로사한다고 농담을 했는데 직접 닥치고 보니 그 말 또한 틀린 말이 아니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혼자 킥킥거리며 싱거운 웃음을 짓는다.

오후 시간은 어김없이 다가오고 시침과 분침이 직각을 이루는 시간이 되면 변함없는 동작으로 등산화 끈을 조여 매고 뒷동산 산책을 하러 나간다.

 

이미지제공 - 박미애 사진가

 

중국발 우한 폐렴이라는 생소한 단어가 들리기 시작했지만, 그저 어디서 이상한 독감이 유행하기 시작했나 보다 생각했다. 연일 뉴스에 보도가 될 때까지만 해도 그동안 에이즈와 사스나 메르스 또는 에볼라 등으로 기억하는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우리하고는 먼 곳 어디에서인가 출현했나 보다 하며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이러한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발생할 때마다 인류는 발 빠르게 치료제나 백신을 신속하게 개발하여 대처했기 때문에 별걱정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우환 폐렴이라는 단어가 익숙해질 무렵 코로나 19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바뀌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전 세계에 빠르게 확산이 되며 설마 했던 일들이 현실로 다가왔으며 마스크를 써야 하는 일상적인 상황이 되었고 이로 인한 경제적인 여파도 날로 커지며 소상공인들의 목줄을 조여 왔다.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는 상황에 이르러 내가 다니던 회사의 상황도 날로 어려워지기 시작해 어쩔 수 없는 긴축과 감원을 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참 어린아이들과 학교에 다니는 학생을 둔 직원을 감원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대기업에 근무하다 간부로 명예퇴직을 하고 경영지원 이사 업무를 맡고 있는 낙하산이며 인생 일 막 이장을 사는 자신이 사표를 내는 것이 맞는 일이었다. 그렇게 코로나 19 바이러스에 치명타를 맞고 생각지도 않은 코로나 실업자로 백수의 왕자에 등극하게 되었다.

그동안 열심히 국가에 세금 내듯이 낸 고용보험에서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어 졸지에 원하지 않은 국가공무원의 신분이 되었다고 농담으로 위로를 하며 웃었다.

그래도 아직은 왕성하게 사회 활동을 할 수 있는 나이라고 자부하던 시기에 사표를 낸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치명적일 수도 있으나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대기업 명예퇴직을 하면서 퇴직연금으로 저축해 놓은 약간의 돈이 있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무엇보다도 시와 소설을 통해  작가로 등단하여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며 아직은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는 여력이 되어 대학에 나가 강의도 할 수도 있다. 인천광역시 객원 기자로 위촉이 되어 사회 활동을 이어 나갈 수 있다는 것으로도 퇴직은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대기업을 다니면서 기계처럼 돌아가는 일상을 살면서 개인적인 공부를 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으나 중소기업의 임원으로 일을 하면서 그래도 시간을 내서 그동안 하고 싶었던 국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에 재학 중인 것 또한 퇴직 이후에 가장 큰 위안이 되기도 했다.

퇴직하고 처음에는 벌써 이 나이에 사회로부터 폐기되어 쓸모없는 잉여 인력이 되었나 하는 안일한 생각이 안 들은 것도 아니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보니 너무도 홀가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시간에 대한 개념이 그동안에는 회사라는 조직과 사회적 체면이나 거대한 틀 속에서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모든 것들이 나의 의사와 관계없이 사용되었다면 지금의 시간은 온전히 나의 의사대로 나를 위한 나만의 시간을 가장 편하고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는 것은 그동안 느껴 보지 못한 진정한 자유로운 영혼의 삶이었으며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때 아빠도 방학 한번 해보았으면 원이 없겠다고 말한 적도 있지만, 요즘의 하루하루가 여유롭고 기쁨에 충만한 나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