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릴 때면 경춘선을 타라 - 춘천 부용산행

2021-01-11     차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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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릴 때면 경춘선을 타라

- 춘천 부용산행

 

 

 

서울 용산역에서 ITX청춘 열차에 오릅니다. 한 시간 십 분 후면 춘천역에 도착할 것입니다. 언제부터인가 휴일 새벽에 배낭을 메고 경춘선을 타는 일은 일상이 되었지만, 그날 새벽의 감흥은 늘 그대로입니다. 지천명의 문턱을 넘어선 그날 새벽, 창문을 열고 싱그러운 바람이 스쳐간 여명을 지켜보는 가슴으로 차올랐던 강렬한 설렘 그대로입니다. 그날이 걷기의 시작이었습니다. 먼저 출퇴근을 걸어서 했고, 휴일이면 배낭을 메고 산길 강길 바닷길, 그리고 도시의 골목길을 종일 걸었습니다. 한양도성길과 서울둘레길을 수차례 걸었고, 이제 북한강길과 그 주변의 산길 걷기에 퐁당 빠졌습니다.

 

걷기는 시를 짓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책상에 앉아 시를 짓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에, 생각도 발에 있고 눈도 발에 있으니 걸어야만 시어를 낚을 수가 있었습니다. 특히 시조의 운율을 타고 흐르는 향기에 매료되어 배우고 짓기 시작했습니다. 시조를 통하여 우리 고유의 정서와 풍류와 정한을 느낄 수 있었고, 그것들이 익숙하고 정겨운 가락과 창(唱)이 되어 오는 것만 같아 좋았습니다. 시조에는 독특한 표현의 함축미가 싱싱하게 살아있기 때문에, 간결하면서도 순발력 넘치는 시어를 낚는 기쁨을 발견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산과 강과 바다로 쉼 없이 시어를 찾아다녔습니다.

 

차창으로 가을빛에 반짝이는 북한강은 바라만 보아도 흥겨운 풍경입니다. 생각도 글짓기도 접어두고, 그냥 보이는 대로 보고 들리는 대로 들으며 갑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기억할 것도 생각할 것도 많아지는 게 인간사인가? 젊은 시절에는 늘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서 시행착오를 경험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생각이 많아지면서 행동은 소극적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신중함도 길어지면 소심함이 되고, 생각도 많아지면 병이 되는가 봅니다. 언제부터인가 시조를 짓는 것에 회의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시조의 3장 6구 12음보의 도식에 얽매여서 현실과 매우 유리된 시조를 짓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현재의 언어로 현실의 삶을 맛있게 그려내지 못하는 역량의 한계에 부딪혀 고민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춘천역에서 내렸습니다. 쌀쌀하지만 맑고 깨끗한 날씨입니다. 역 광장을 가로질러 길 건너 버스정류소에서 11번 버스를 타고 소양강댐 정상으로 달려갑니다. 어느 날 음식문화에 깊은 식견이 있는 지인과 걷기를 마치고, 식사하는 자리에서 무심결에 시조에 관한 나의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묵묵히 듣고 있던 그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은 모두 퓨전 음식이야. 당연히 전통 음식이란 것도 마찬가지야. 당시의 음식 그대로 전해진 것은 없다네. 시대를 거치면서 그 시대의 재료와 그 시대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변화를 거듭한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 음식은 벌써 사라졌을 걸세''

 

한동안 말을 잊고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습니다. 나는 괜한 시조의 도식에 집착해서, 우리 전통의 아름다운 정서로 가득한 시조를 현대인의 언어로 맛깔스럽게 빗어내려는 노력을 간과하고, 구시대의 화석에 숨어있는 시향만을 찾으려 하지는 않았는지 뒤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시조가 우리의 정형시로서의 원형을 잃지 않고 명맥을 유지하면서 현대까지 유전하여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각 시대마다 각 시대의 언어로 멋지게 지어냈기 때문이었는데.

 

소양호 선착장을 출발한 청평사행 배가 반짝이는 물결을 가르며 달려갑니다. 물결은 바람을 보내 반갑게 눈인사를 합니다. 상큼한 바람이 콧등을 스치고, 시원하게 씻은 눈이 맑아졌습니다. 배에서 내려 십여 분을 걸어가면 두 갈래 길을 만납니다. 이곳에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왼쪽으로 가면 오봉산, 오른쪽으로 가면 부용산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왼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오봉산 아래 유서 깊은 사찰 청평사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만 홀로 부용산으로 올라갑니다. 인적 없는 산길은 사색하며 걷기에 딱 좋은 길입니다. 인류의 지난한 진화의 역사는 생물학적인 유전자 뿐만 아니라 언어의 변형도 필연적이었을 것입니다. 인간의 말은 구강에서 나오는데, 세대를 거듭하면서 축적된 유전자의 원형에 새로운 유전자가 더해져 새로운 개체가 되듯이 구강과 언어도 변할 것입니다. 동일 지역에서 동일 언어를 사용한 조상으로 이어진 가계라 하더라도 각 세대의 조상과 그 후손의 구강구조와 언어 습관은 너무도 다를 것입니다.

 

부용산은 외롭습니다. 옆 산 오봉산 자락에 자리 잡은 청평사가 워낙 유명하다보니 사람들이 그쪽으로만 몰려갈 뿐, 이 산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 듯합니다. 세상인심을 산도 피해갈 수 없나 봅니다. 그렇다고 섭섭하거나 실망할 일인가? 덕분에 한적하게 숲길을 걸어갈 수 있고, 매미소리, 새소리, 바람소리와 벗이 될 수 있으니 더 바랄 게 무엇이랴. 시조를 짓기 시작했던 고려 말, 조선 초의 우리의 조상과 지금의 우리가 대화를 하려면, 외국어 통역사가 필요하듯이 통역사가 필요할 수도 있지 않을까? 고등학교 때 고전 수업 받으면서 고어를 읽고 해석하기가 얼마나 낯설고 어려웠는지를 경험했던 것처럼.

 

부용산은 육산입니다. 낙엽이 수북하게 쌓인 흙길에서 전하는 부드러운 촉감이 발바닥을 위로합니다. 편안하게 걷는 맛이 일품입니다. 능선은 크고 작은 나무가 건강하게 자라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풍요로운 산길입니다. 다만, 인적이 드문 숲길에서 길이 뚜렷하지 않아 길 찾기에 신경이 쓰이곤 합니다. 흔하디흔한 이정표도 없습니다. 정상(881미터)에 도착해도 변변한 표지석도 볼 수 없습니다. 정상표지석은 벽돌 몇 장 사이로 조그만 간판처럼 위태롭게 끼여 있을 뿐입니다.

 

결국 시조의 정형성은 그 원형을 잃지 앓으면서 현대 우리가 쓰는 언어로 멋스럽게 빗어낼 수 있어야 빛나고 유전할 수 있을 듯합니다. 이미 지난 시대의 도식에 집착해서 현대 우리가 쓰고 있는 언어를 구시대의 언어처럼 비틀어 쓰는 것만이 전통의 계승 발전이 아닐 것 같습니다. 현대 우리의 언어를 제대로 써서 짓는 것도 값진 노력일 듯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따뜻하고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현대 우리의 언어로 담아낸 시조가 아름답다!

 

사람들은 익숙한 길을 좋아하고,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걷는 길을 좋아합니다. 어찌 그것을 탓할 수 있으랴. 그러나 어찌 또 그런 길만을 갈 수 있으랴. 이미 있는 길을 갈 수도 있고, 새로운 길을 찾아 갈 수도 있고, 길이 없으면 만들어서 갈 수도 있는 게지. 살아간다는 것, 삶이라는 것도 이와 같은 것일 게다. 흔들렸다 가다듬고, 또 흔들리면서 애써 가다듬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한살이인 것을.

 

 

흔들릴 때면 경춘선을 타라

세월이 가도 추억은 남는 것

 

젊은 날

흔들릴 때면 타고 떠났던 열차는

말뚝에 매여 있었다

세월은 그렇게 서서 늙어갔다

이상의 푯대는 바람에 찢기고

꿈은 일상의 그림자에 가려진 뒷문에서

창백한 얼굴이 낯설어 고개를 돌렸다

절망이 성벽처럼 막아설 때

훌쩍 떠났던 열차는

도피의 공범만은 아니었다

 

가을볕은 강물로 하염없이 쏟아지고

바람은 단풍나무 밑에서 기억을 다듬고

강 따라 바람 따라 달려가는 열차에서

추억이 문을 화들짝 열고 뛰어왔다

 

(졸시,“흔들릴 때면 경춘선을 타라”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