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4번 재배하는 밀? 혁신 기술로 태어난 국산 신품종 ‘이룸’
국내 밀 산업의 판이 바뀌기 시작했다. 13년이 걸리던 품종 개발 기간을 절반 이하로 줄이며 탄생한 국산 밀 ‘이룸’이 그 신호탄이다. 농촌진흥청이 국내 최초로 세대단축 육종기술을 밀 품종 개발에 적용해 제빵 특화 품종 ‘이룸’을 선보이면서, 국산 밀 자급률 반등의 결정적 열쇠가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세대단축 육종기술은 작물 생육 온도와 일장을 정밀 조절해 생육 주기를 압축하는 기술로, 씨 뿌린 뒤 88일이면 수확이 가능하다. 1년에 최대 4회 재배가 가능해 계통 육성 기간을 기존 8년에서 2년으로, 전체 신품종 개발 기간은 13년에서 7년으로 줄였다. 2023년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에 선정될 만큼 차세대 작물육종 핵심기술로도 인정받았다.
이 기술로 탄생한 ‘이룸’은 남부 지역의 기후를 정확히 겨냥했다. 전남·경남·경북·제주의 1월 평균 최저기온 조건을 충족하며, 출수기와 성숙기가 ‘금강’ 품종과 유사해 벼·콩과의 이모작이 용이하다. 10a당 432kg을 생산해 ‘금강’보다 수량이 15% 많고 쓰러짐에도 강한 특성을 보였다.
가장 눈에 띄는 강점은 제빵 품질이다. 글루텐 단백질 유전자 조성 점수가 만점(10점)으로 평가됐고, 단백질 함량과 글루텐 함량이 기존 ‘백강’보다 높아 반죽 탄력과 빵 부풂이 우수했다. 실제 빵 부피는 ‘백강’ 대비 4~10%가량 크게 나왔으며 비용적 역시 더 높았다. 2024년 농가 재배분을 대상으로 한 평가에서도 기존 국산 밀가루 대비 단백질 함량이 1.0~2.3%포인트 높았고, 전국 8개 제과·제빵업체 평가에서도 작업성·부품성 등 제빵 적성이 모두 높은 점수를 받았다.
올해 열린 현장 연시회에서는 농업인, 제분업체, 제빵업체 등이 한자리에서 이 품종의 생육과 제빵 품질을 직접 확인하며 산업적 활용 가능성을 검증했다. 단순히 시험 단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산업 현장에서 바로 활용 가능한 품종이라는 점을 증명한 셈이다.
농촌진흥청은 2026년 농가 현장실증 연구에 들어가 2028년 조기 보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밀 생산-제분-가공-유통-제품화를 연결하는 ‘밀 밸리화 사업’과 직접 연계해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품질 안정성을 연차·지역 단위로 검증할 계획이다. 국산 밀 산업의 기반을 실질적으로 강화하려는 전략적 접근이다.
이종희 농촌진흥청 경지이용작물과장은 “‘이룸’은 기술 혁신이 어떻게 산업 현장에서 실질적 변화를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며 “제빵 적성과 지역 적응성을 모두 갖춘 이 품종이 국산 밀 시장에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