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장 평고대18.8m 단일 소나무, 조선 장인의 손길이 드러나다

2025-11-14     정의식 기자

새벽 2시, 서울에서 파주로 향하는 대형 화물차 한 대가 아주 느린 속도로 움직였다. 차량 위에는 국내에서 가장 길다는 18.8m 목재가 실려 있었다. 조선 유교문화의 상징인 서울 문묘 대성전 지붕을 떠받쳤던 평고대, 한옥의 처마 곡선을 결정하는 가늘고 긴 핵심 부재가 150여 년 만에 자리에서 내려와 다시 연구를 위해 길을 나선 순간이었다.

국가유산청과 종로구가 공동 추진 중인 보물 「서울 문묘 및 성균관」 대성전 보수공사 과정에서 확인된 평고대 4본 중, 구조적 이유로 재사용이 어려운 2본이 파주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로 이관됐다. 길이가 18.8m, 두께는 얇고, 충격에 취약한 목재였기에 이송 과정은 간단하지 않았다. 20m 보강틀을 새로 제작해 목재를 감싸고, 진동을 최소화하는 이중 고정 작업을 거쳤다. 수도권의 좁은 도심 도로를 새벽 시간에 천천히 통과하는 방식으로 이동해 마침내 14일 새벽 이송을 마쳤다.

이번에 옮겨진 평고대는 고종 시기인 19세기 중반 벌목된 소나무류 재료로 확인되었다. 당시 장인은 18m가 넘는 거대한 목재를 단일 부재로 쓰기 위해 정교한 치목(목재 다듬기) 기술을 사용했다. 척박한 환경에서 이 정도 길이의 솔부재를 확보해 건축에 투입한 사례는 매우 드물며, 조선 후기 목재 조달과 가공 기술 수준을 보여주는 핵심 증거로 평가된다. 전문가들은 “이 길이를 그대로 유지하며 단일 목재로 사용한 사례는 한국 전통건축 전체를 통틀어도 손에 꼽힌다”고 말한다.

 

 대성전에서 차량으로 이동하는 평고대 

 

대성전 보수공사는 2023년 9월 시작돼 현재 목공 단계를 마쳤으며, 내년 5월 준공을 목표로 진행 중이다. 지난해 지붕 해체 과정에서 길이 미상으로 남아 있던 평고대가 발굴되었고, 이어 7월에는 종도리 아래에서 목수들의 이름과 기록이 남은 상량문까지 발견돼 조선시대 건축현장의 실제 기술·작업 체계·인력 구성을 읽을 수 있는 희귀 자료로 주목받았다. 대성전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조선 최고 교육기관인 성균관의 중심에서 공자의 위패를 모신 상징적 공간이기 때문에 기록 하나, 부재 하나에 담긴 의미가 크다.

올해 7월 열린 수리기술지도회의에서는 평고대 네 본 중 상태가 좋은 두 본은 대성전에 재설치하고, 손상이 심해 구조 안전상 사용할 수 없는 두 본은 보존센터로 이관해 연구용으로 활용하기로 결정됐다. 이에 따라 이관된 평고대의 자리는 국가유산수리재료센터가 보관 중이던 백두대간 소나무 곡재(길이 10m 이상, 직경 45cm 이상)가 채워졌다. 현재 전통기법을 참고한 치목 공정이 진행 중이며, 원형에 가장 가깝도록 복원하는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지난해 4월부터 1년 반 동안 대성전 보수 현장에 평고대를 공개 전시하며 국민이 전통 건축수리 기술을 직접 볼 수 있는 ‘국가유산 수리현장 중점공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번에 함께 이관된 부재에는 재사용이 어려운 추녀 등 선조들의 손길이 남아 있는 부재들도 포함되어 있어 향후 종합적 연구가 이루어질 예정이다.

파주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는 이번에 옮겨진 평고대에 대해 과학적 보존처리, 건조상태 분석, 부재 해부학적 조사, 치목 흔적 검증 등 심층 연구를 추진할 계획이다. 도구 자국, 먹선, 집성 패턴 등 부재에 남아 있는 ‘목수의 흔적’을 중심으로 조선 후기 공법을 밝혀내는 연구도 함께 진행된다. 센터는 이 평고대를 전시·교육 콘텐츠로 재구성해 2026년 중 정식 공개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앞으로도 해체된 전통건축 부재의 체계적 보존과 조사·연구를 확대해 전통건축 기술의 맥을 잇는 데 집중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오래된 나무 한 조각이 150년의 시간을 건너와 다시 학술적 생명을 얻는 과정, 대성전 평고대의 이동은 한국 전통건축이 품고 있는 기술과 기록의 무게를 다시 한 번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