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8년의 방어 설계가 그대로... 서천읍성, 사적 지정으로 되살아나다
1438년의 방어 전략이 21세기에도 말을 걸어온다. 충남 서천의 ‘서천읍성’이 2025년 11월 11일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으로 지정됐다. 바다 쪽으로 열린 금강 하구를 지키기 위해 세운 조선 초기 연해읍성의 축성 방식 변화가 현장에서 그대로 드러나는 이 성곽은, 조선 초기 방어·행정의 고민과 기술적 실험이 고스란히 남은 ‘시간의 현장’이다.
서천읍성은 세종 연간(1438년~1450년경) 축성된 연해읍성으로, 둘레 1,645m 규모 중 1,535.5m(약 93.3%)가 현재까지 남아 있다. 연해읍성 가운데 산지를 활용해 성을 쌓은 드문 사례로, 지형을 적극적으로 끌어쓴 축성 방식과 성벽의 높은 완결성은 곧 현장 보존의 가치를 말해준다. 특히 일제강점기 ‘조선읍성 훼철령(1910년)’으로 전국의 많은 읍성이 허물려 간 상황에서도 서천읍성은 남문지 주변 일부를 제외하면 성벽 대부분이 온전히 보존된 점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학계가 주목하는 점은 서천읍성에서 두 가지 서로 다른 조선 초기 축성기법이 동시에 확인된다는 사실이다. 1438년 반포된 『축성신도(築城新圖)』에 따른 ‘계단식 내벽’ 구조와, 이후 1443년 이보흠이 건의해 한양도성 축조기법에서 도입된 ‘수직 내벽’이 공존한다. 즉 같은 성 안에서 계단식 내벽의 설계 기준과 그 한계에 대응하려는 수직 내벽 방식이 병존한다는 것은, 조선 초 축성 정책이 현장에서 어떻게 수정·보완되었는지를 직접 보여주는 희소한 실물 증거다. 이 점 하나만으로도 서천읍성은 조선 초기 군사·토목사 연구에서 중요한 ‘교차점’이 된다.
세부 구조에서도 독특함이 드러난다. 문헌상 17곳으로 추정되는 치성(雉城)이 현장 조사에서 16곳이 확인됐고, 이들은 대체로 약 90m 간격으로 설치되어 있다. 이는 1433년(세종 15년) 제시된 ‘150보(약 155m) 간격’ 기준보다 훨씬 촘촘한 배치다. 치성이 이렇게 촘촘히 배치된 예는 다른 읍성에서 드물어, 서천읍성만의 방어 설계철학 또는 지역적·전술적 요구를 반영한 독특한 양식으로 평가된다. 또한 성 바깥을 둘러 판 해자의 유구와, 이후 파헤쳐진 구덩이 형태의 수혈유구(땅을 판 구덩이 흔적)도 확인되어, 성곽의 초기 축조뿐 아니라 후대의 추가 방어·관리 행위까지 층위별로 복원할 단서를 제공한다.
역사적 배경을 간단히 짚으면, 서천읍성은 금강 하구를 통해 충청 내륙으로 침입하던 왜구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 주도로 축성된 연해읍성의 하나였다. 당시 국가적 방어전략과 지방행정 안정의 요구가 맞물리면서 연해읍성이라는 유형이 탄생했는데, 서천읍성은 그 과정과 변화의 ‘중간 기록’을 땅 위에 보존하고 있다. 특히 ‘계단식 내벽→수직 내벽’이라는 기술적 변화는 중앙(한양)과 지방 사이에 공유·전파되던 축성기술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 단서를 준다.
보존 상태와 향후 활용 방안도 주목된다. 국가유산청(청장 허민)은 서천군과 협업해 서천읍성을 지역을 대표하는 국가유산으로 육성할 계획을 밝혔다. 계획의 핵심은 가치를 널리 알리는 홍보, 체계적인 보수·정비, 그리고 주민 중심의 보존·관리·활용 사업 발굴이다. 현장 보전이 잘 되어 있는 만큼, 정밀 발굴조사와 학술적 기록화, 성곽의 원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의 탐방로 정비·전시 해설 시설 마련, 지역 역사교육과 연계한 커뮤니티 기반 프로그램 등이 병행되면 지역 문화유산의 지속 가능한 활용 모델이 될 수 있다.
사진 한 장에는 600년 가까운 시간의 층위가 찍힌다. 성벽의 돌결, 치성의 돌출부, 해자 자리의 잔영, 그리고 성 내부와 외부의 토층 차이는 연구자에게는 데이터이자 복원 시나리오이며, 주민과 방문자에게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경험 지점이다. 국가유산청과 지자체가 공조해 발굴·보수·활용의 균형을 지키면, 서천읍성은 단순한 ‘남아있는 성벽’이 아니라 조선 초기 국방·행정정책의 변화를 읽는 열린 교실이 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남아 있는 1,535.5m의 성곽은 과거의 위기 대응과 기술 실험의 흔적을 품고 있다. 학계는 더 정밀한 발굴과 보존처리를 통해 축성 단계별 연대와 개입 양상을 규명해야 하고, 지역은 이를 지역 정체성 강화와 지속 가능한 관광 자원으로 엮어내야 한다. 서천읍성의 사적 지정은 단지 표식 하나를 추가한 것이 아니라, 역사 현장의 보존과 활용을 위한 본격적 출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