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호두나무가 있는 천안 광덕사로 떠날볼까
촬영 : 이현준 사진작가
충남 천안 광덕산 자락, 고요한 산사 광덕사(廣德寺)에는 하나의 ‘살아 있는 역사’가 서 있다. 높이 18미터, 둘레 4미터가 넘는 거대한 호두나무 한 그루. 바로 한국에서 처음으로 심어진 호두나무, 천연기념물 제398호다.
이 나무는 고려 충렬왕 16년(1290년), 원나라에서 귀국한 유청신이 호두 열매와 묘목을 가져와 광덕사 경내에 심었다는 전설로 시작된다. 그날의 한 알의 씨앗이 오늘날 전국에 퍼진 모든 호두나무의 뿌리가 되었고, 천안이 ‘호두의 고장’이 된 역사의 출발점이 되었다.
수령 약 400년, 높이 20미터 가까운 이 나무는 여전히 살아 숨 쉰다. 사계절마다 다른 표정을 짓는 이 호두나무는 단순한 자연물이 아니라 한국 농업문화와 생태사의 원형이자 인간과 자연의 오래된 동행을 상징한다.
봄에는 새순이 피어나고, 여름에는 짙은 녹음으로 경내를 덮으며, 가을이면 여물어 떨어진 호두가 땅 위를 두드린다. 겨울의 앙상한 가지마저도 세월의 흔적처럼 고요하다.
광덕사는 이 호두나무와 함께 천년고찰의 숨결을 간직하고 있다. 신라 자장율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전하며,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불교와 지역 문화의 중심 역할을 해왔다. 절 안에는 조선 여류시인 김부용의 시비가 서 있고, 고즈넉한 법당 주변엔 세월의 무늬를 간직한 기와와 돌담이 길게 이어진다. 특히 호두나무 앞에서 바라보는 광덕사의 전경은 사진가들에게 ‘빛과 시간의 성소’로 불린다.
아침의 안개가 걷히는 시간, 빛이 나무 사이로 스며들며 만들어내는 실루엣은 한 폭의 회화 같다.
오늘날 광덕사 일대는 천안 지역 호두 생산량의 약 60%를 차지하는 핵심지다. 호두과자의 원산지로도 알려진 천안의 대표적인 상징은 바로 이 나무에서 비롯된 셈이다. 역사와 전설, 그리고 산업이 한 뿌리에서 이어진 보기 드문 장소다.
방문한다면 오전 이른 시간이나 해질 무렵이 좋다. 그 시각의 광덕산 숲은 부드러운 빛으로 물들고, 나무의 그림자는 더욱 깊어진다.
사찰 경내에서는 조용히 걸으며, 특히 나무 주변은 보호구역임을 인식해야 한다. 뿌리와 가지는 오랜 생명의 근원이자 역사적 유산이다.
카메라를 챙겨라. 나무와 법당, 산자락이 한 프레임 안에서 완벽하게 어우러지는 순간이 있다. 광덕사까지 오르는 숲길은 완만하지만 일부 경사가 있으니 편안한 운동화가 좋다.
광덕사 호두나무는 말하자면 “한 그루의 역사서이자, 천 년의 생명 기록”이다.
나무가 본 세상, 그 아래 스며든 사람들의 발자국, 그리고 그 자리에 쌓인 시간들이 켜켜이 남아 있다.
이번 주말, 잠시 도시의 속도를 내려놓고 이 거목 아래 서서 바람 한 줌, 햇살 한 스푼, 그리고 나만의 한 구절을 더해보자.
그 순간, 나무는 조용히 속삭인다.
“나는 천 년 전부터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