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형 알츠하이머 치료의 문이 열렸다
한국인 대상 대규모 정밀연구가 알츠하이머병의 유전적 배후를 대대적으로 규명하며 맞춤치료 시대의 문을 열었다.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이 주도한 BRIDGE 프로젝트의 한국인 노인성 치매 코호트(BRIDGE-LLOD)를 기반으로 한 통합 분석 결과, SORL1을 비롯해 APCDD1, DRC7 등 새로운 발병 관련 유전자가 확인됐고, 여러 유전자가 함께 작용해 위험을 누적시키는 ‘누적 효과(cumulative effects)’ 모델이 제시됐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연속 게재되며 국제적 검증도 마쳤다.
이번 성과의 핵심은 임상 진단 정보만으로는 드러나지 않던 병리적 변화를 직접 반영한 점이다. 연구진은 전장 유전체(WGS) 정보와 함께 아밀로이드 PET 영상이라는 병리학적 바이오마커를 병렬 분석해, 베타아밀로이드 축적과 인지저하를 직접 연결하는 유전적 인자를 규명했다. 특히 SORL1 유전자는 APP(아밀로이드 전구체 단백질)의 세포내 수송과 분해를 조절하는 기능을 통해 베타아밀로이드 축적을 억제하는 보호인자로 확인됐다. 기능 저하가 일어날 경우 아밀로이드 축적이 늘어나 알츠하이머 위험이 높아진다는 기존 가설을 한국인 집단에서 병리영상과 유전체로 직접 입증한 것이다.
또 다른 주목점은 다수 유전변이의 동시 존재가 질병 발병 위험을 기하급수적으로 높인다는 ‘누적 효과’ 모델의 제안이다. 단일 유전자의 영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던 발병 양상이, 특정 조합에서는 급등하는 패턴을 보였다. 연구진은 이를 바탕으로 개인별 유전 조합에 따른 누적 위험 점수화를 시도했으며, 이 점수는 향후 정밀한 위험 예측과 표적치료군 선별에 활용될 수 있다. 즉 단일 표적을 겨냥한 치료 접근에서 벗어나 개인의 유전적 프로파일에 맞춘 맞춤형 다중 표적 전략이 현실적 가능성을 갖게 된 셈이다.
연구의 데이터 기반은 정부 주도로 구축·관리되는 장기 코호트와 데이터 인프라다. BRIDGE-LLOD 코호트는 정상군, 경도인지장애(MCI), 치매 환자를 장기간 추적해 임상·영상·유전체 자료를 축적하고 있으며, 2021~2023년 1단계에 이어 2024~2026년 2단계 사업이 진행 중이다. 이처럼 통합 데이터베이스와 연구자 간 공유 플랫폼이 마련되면서 아시아인에 특화된 유전적 다양성과 고유 변이를 포착할 수 있었다. 이는 지금까지 대부분의 GWAS가 유럽계 집단에 편중돼 아시아 인구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했던 한계를 직접적으로 극복했다는 의미가 있다.
연구진은 실험 설계와 분석의 정교함도 강조했다. 전장유전체 전수(whole-genome sequencing) 데이터와 PET 기반의 아밀로이드 병리 데이터는 각각 독립적 증거를 제공하지만, 둘을 결합함으로써 발병 기전의 인과적 연결고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하기 위해 다중 검정 보정과 집단 내·외적 검증을 병행했으며, 유전자 기능 연관성은 분자생물학적 기전 해석과 선행 연구와의 비교를 통해 보완했다. 연구 결과는 동일한 결론을 지지하는 두 편의 논문으로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잇달아 실렸다.
임상·사회적 함의는 크다. 알츠하이머병은 전 세계적으로 약 5,700만 명 이상이 앓는 대표적 신경퇴행성 질환이며, 유전요인이 전체 발병 위험의 60~8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유전정보를 활용한 예측과 표적치료는 주로 유럽계 데이터에 기반해 왔다. 이번 연구는 아시아, 특히 한국인 집단에서 특이적으로 관찰되는 유전적 요인을 밝혀냄으로써,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 환자군에서 더욱 정확한 위험 예측 모델과 임상시험 설계가 가능해졌음을 시사한다.
정책적 파급효과도 즉각적이다.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국가 단위 코호트와 데이터 인프라의 가치가 입증되었다며, 향후 유전체·임상·영상 정보를 통합하는 연구를 더욱 확대해 치매의 조기예측과 맞춤형 치료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연구책임자인 서상원 교수(삼성서울병원 신경과)는 “임상 진단을 넘어서 병리적 바이오마커와 유전체 데이터를 결합해 병의 생물학적 기전을 직접 확인했다”면서 “이번 연구는 정밀한 위험 예측과 환자 맞춤형 중재를 설계하는 데 핵심 근거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임상 현장에는 당장 적용 가능한 변화가 예상된다. SORL1 등 보호유전자의 기능을 회복하거나 베타아밀로이드 축적 경로를 차단하는 약물 개발이 가속할 수 있으며, 누적 위험 점수에 기반한 고위험군 선별을 통해 조기 진단·검진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치할 수 있다. 또한 유전적 리스크 프로파일을 고려한 임상시험 대상 선별은 약물 효과의 신호를 더 명확히 해 약물 개발 실패율을 낮추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다만 한계도 분명하다. 현재 결과는 한국인 코호트에 기반한 것이므로 다른 아시아 집단이나 다인종 환경에서의 일반화 가능성은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 또한 유전요인과 환경·생활습관의 상호작용을 완전히 분리해 설명하기엔 아직 자료가 제한적인 만큼, 향후 장기 추적과 환경·표현형 데이터를 포함한 다층적 분석이 요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연구는 임상진단 중심의 전통적 접근에서 한 단계 도약한 사례로 평가된다. 병리영상과 전장유전체를 결합한 ‘바이오마커 기반 유전체 연구’가 알츠하이머병의 조기 예측과 개인 맞춤형 치료 전략 수립에 실질적 토대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향후 치매 연구와 임상 관리의 방향을 바꿀 잠재력을 지녔다. 한국인 특이 유전자를 표적으로 하는 약물개발과 누적 위험 모델을 활용한 선별검사 도입은 머지않아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