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흙이 만든 마음의 회복력... 치유농업 효과, 수치로 입증

2025-11-05     박미애 기자

‘마음이 지친 시대, 흙이 처방이 된다.’
농촌진흥청이 15년간의 연구 데이터를 한데 모아 치유농업의 효과를 수치로 증명하고, 국내 최초의 ‘표준 평가 기준’을 제시했다. 그동안 ‘감성적인 체험’으로 여겨졌던 치유농업이 이제는 객관적 통계와 심리학적 지표로 설명 가능한 회복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는 순간이다.

이번 연구는 치유농업이 도입된 2010년부터 2024년까지 국내에서 수행된 실험 연구 1,407건을 정밀 통합 분석(메타분석)한 결과다. 연구진은 15년간의 데이터를 토대로 정신적·사회적 변화를 측정할 수 있는 6개 주요 지표를 표준화했다.

부정 정서 영역에서는 △스트레스 △우울 △불안이 선정되었고, 긍정 정서 영역에서는 △자아존중감 △자기효능감 △대인관계가 포함됐다. 분석 결과는 명확했다.

스트레스 15.1% 감소, , 우울 19.4% 감소, 불안 19.6% 감소, 자아존중감 14.3% 증가, 자기효능감 9.9% 증가, 대인관계 13.0% 향상

모든 지표는 코헨(Cohen, 1988) 효과 크기 기준상 ‘중간 이상’, 즉 실질적이고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마음의 온도를 올리는 농업의 힘”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첫 사례다. 연구진은 이제 치유농업 프로그램의 효과를 입증하기 위해 별도의 대조군 실험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설명한다. 참여자의 프로그램 전·후 변화값을 이 기준과 비교만 하면 된다. 평가 절차 간소화, 비용 절감, 신뢰도 향상이 동시에 가능해진 셈이다.

 

 

김광진 국립원예특작과학원 도시농업과장은 “이번 기준은 치유농업의 효과를 명확하면서도 간편하게 측정하는 이정표가 될 것”이라며, “단순한 증상 완화가 아닌 자아와 사회적 관계까지 회복시키는 통합적 정신건강 관리의 핵심 자원으로 발전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번 결과의 학문적 근거도 충분하다. 연구 논문은 국제학술지 『Acta Psychologica(IF 2.1)』에 게재되며, 국내 연구로서는 드물게 심리학적 정규화(normalization) 기법을 활용해 평가 체계를 구축했다.
논문명은 “Investigating standardized criteria to evaluate the impact of agro-healing programs on psychological and interpersonal outcomes: Utilizing normalization methods.”

이 연구는 치유농업이 단순 체험을 넘어 보건·복지·교육·관광 정책을 통합할 수 있는 과학 기반의 치유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앞으로는 전국 각지의 치유농업센터가 동일한 기준으로 성과를 비교·관리하게 되며, 프로그램의 질적 수준이 균일하게 향상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이 표준 기준은 농촌과 도시를 잇는 ‘심리·사회적 건강 플랫폼’의 기초자료로 활용될 가능성도 높다. 복지시설, 학교, 요양원 등에서 참여자 집단 간 효과를 손쉽게 분석할 수 있고, 그 결과는 향후 치유농업사 자격제도, 치유농장 인증제의 근거로도 확장될 수 있다.

흙을 만지고 식물을 돌보는 일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그 안에는 자율성과 성취감, 관계 회복이라는 정서적 구조가 숨어 있다. 농촌진흥청이 제시한 이번 표준화 기준은 그 치유 과정을 ‘보이는 언어’, 즉 데이터로 바꾼 첫 시도다.

치유농업은 이제 감성의 영역을 넘어, 심리과학·사회복지·공공보건이 만나는 교차점으로 진입했다. 15년의 연구가 그 길을 열었고, 앞으로의 과제는 그 길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게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