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입맛에 딱 맞는 복숭아’…당도·경도 기반 맛 지도 공개

2025-09-23     이혜숙 기자

복숭아 한 입에 ‘내 입맛에 딱 맞는 품종’을 골라 담을 수 있는 시대가 왔다. 농촌진흥청이 국내 유통되는 18개 복숭아 품종의 당도·경도·산도·당산비를 계량해 시각화한 ‘수요자 맞춤 복숭아 맛 지도’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겉모양만으로는 알기 어려웠던 식감과 단맛의 차이를 객관적 수치와 그래픽으로 보여줘 소비자가 합리적으로 복숭아를 고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적이다.

농촌진흥청은 전국 주요 산지유통센터(APC)를 통해 출하된 복숭아 샘플을 채집하고, 출하 규격과 소비지 유통(출하 후 최대 3일) 상황을 반영해 품질 지표를 측정했다. 당도는 당도계(Brix)로, 과육의 단단함은 경도계로, 신맛은 전형적인 산도 측정 방식으로, 여기에 당산비(단맛과 신맛의 비율)를 계산해 네 가지 핵심 축을 만들었다. 이렇게 확보한 데이터를 다차원으로 분석해 시각적으로 이해하기 쉬운 ‘맛 지도’로 구현한 결과, 18개 품종은 ‘아삭-상큼’, ‘쫀득-달콤새콤’, ‘말랑-달콤’, ‘아삭-달콤’의 네 묶음으로 명확히 구분됐다.

각 묶음의 특성은 소비자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예시 품종과 함께 정리됐다. ‘아삭-상큼’군에는 선프레, 마도카, 엘바도백도 등이 포함되며, 씹는 맛이 살아 있고 산미가 더해져 저장성도 우수한 성향을 보였다. ‘쫀득-달콤새콤’군(유명·조황·천중도 등)은 단맛과 산미의 균형이 좋아 다양한 취향의 소비층에서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말랑-달콤’군(장호원황도·미홍·미황·일천백봉 등)은 부드럽고 폭신한 식감에 달콤함이 강조된 ‘클래식한 복숭아’ 맛으로, 대중적 인기 품목에 해당한다. ‘아삭-달콤’군의 대표 품종인 양홍장은 아삭한 식감과 강한 단맛을 동시에 원하는 소비자층을 공략한다.

맛 지도의 유의미한 성과는 단순한 분류를 넘는다. 농촌진흥청은 “지도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인 특성은 ‘아삭함’과 ‘말랑함’—즉 경도(硬度)이었다”며, 이 같은 분류가 소비자들이 흔히 ‘딱딱한 복숭아 vs 물렁한 복숭아’로 구분하는 선호와도 높은 일치도를 보였다고 설명한다. 이는 현장 활용성과 신뢰도를 뒷받침하는 결과로, 실제 소비자 구매 행태와도 연결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 ‘맛 지도’는 소비자뿐 아니라 생산자·유통·정책 영역에서 다양한 파급효과를 낼 수 있다. 우선 소비자 관점에서, ‘아삭한 식감’을 선호하면 선프레·마도카 계열을, ‘부드럽고 달콤한’ 복숭아를 원하면 장호원황도·미홍 계열을 선택하는 식으로 구매 결정을 쉽게 할 수 있다. 유통업체와 소매점은 품종별 유통기한과 저장성 정보를 바탕으로 입고·진열 전략을 세워 품질관리 비용과 폐기물을 줄일 수 있고, 계절·지역별 재고 로테이션도 합리적으로 설계할 수 있다. 생산자 입장에서는 맛 지도를 근거로 목표 시장(수확 직판·도매·가공용 등)에 맞는 품종 선택과 재배·출하시기 조율에 활용할 수 있다.

 

 

정책적 효용도 크다. 농촌진흥청 임종국 저장유통과장은 “복숭아 맛 지도는 소비자에게는 품종별 맛 특성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자료이고, 정책적으로는 품질 등급 규격화의 기초가 되는 성과”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정부 차원에서 품질 등급과 표시 기준을 정비할 때, 품종별 객관적 품질 지표는 등급 기준·라벨링 규정·수출 품질 규격 마련의 핵심 근거가 된다. 나아가 수출시장에서는 ‘맛지도 기반 품종 마케팅’으로 특정 수입국 소비자 선호에 맞춘 품종을 전략적으로 보급·브랜딩할 수 있다.

현장 적용 방안은 구체적이다. 소매점과 산지 직거래장터에서는 품종명과 함께 ‘맛 지도 표기(아삭-상큼 등)’를 라벨에 달아 소비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면, 충동구매를 줄이고 재구매율을 높일 수 있다. 농협·유통조직은 계절별 판촉을 ‘맛 특성’에 맞춰 기획하고, 체험형 판촉(시식·품종 비교 시식 행사)을 통해 소비자 교육을 병행하면 효과가 배가된다. 또한, 가공업체는 ‘쫀득-달콤새콤’군을 잼·청·디저트용 원료로, ‘말랑-달콤’군을 생과 소비용으로 분류해 제품 개발과 원료 조달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소비자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실전 팁도 맛 지도로부터 나온다. 우선 ‘구매 요령’이다. 만약 아삭한 식감을 원한다면 라벨에 아삭 계열 품종이 명시된 상품을 선택하되, 표면의 상처 유무와 탄력(살짝 눌렀을 때의 복원력)을 확인한다. 부드러운 식감을 원하면 손끝으로 살짝 눌러 어느 정도 말랑함이 느껴지는지를 체크하고, 향(복숭아 향의 강도)은 당도와 연관되므로 향이 진한 과일을 고르면 만족도가 높다. ‘보관 요령’으로는, 덜 익은 복숭아는 실온에서 완전히 숙성시킨 뒤 냉장 보관으로 숙성 속도를 늦추면 신선도를 오래 유지할 수 있다(단, 냉장 보관은 숙성 이후 장기 보관 수단임). 유통기한과 출하 일자를 확인할 수 있다면 신선도 예측에 크게 도움이 된다.

이번 연구가 제시하는 한계와 향후 과제도 명확하다. 현재는 유통되는 18개 품종을 대상으로 했으나, 국내에는 100여 종 이상의 복숭아가 유통되어 품목·지역 확대가 필요하다. 농촌진흥청은 품종과 재배지 범위를 넓혀 계절별·지역별 맛 지도를 고도화하고, 소비자 패널 테스트·시장 반응 데이터를 결합해 ‘맛 지도’를 지속적으로 보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더불어 품질 표준화 작업과 계통적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통해 장기적으로는 국가 차원의 ‘과일 품질 아카이브’로 확장하는 것이 목표다.

농업·유통 현장과 소비자 모두에게 작은 혁명이 될 수 있는 이 지도는, ‘복숭아를 어떻게 고를까’라는 오래된 고민에 과학적 답을 제시했다. 단지 맛의 분류를 넘어서 유통 효율화, 품종 전략, 정책 표준화까지 연결되는 다층적 가치를 지닌 만큼, 앞으로의 적용 범위 확대와 데이터 축적이 주목된다. 소비자는 다음 복숭아 구매 때 ‘맛 지도’를 떠올리며, 자신의 취향에 딱 맞는 품종을 골라 들판에서 막 따온 듯한 제철의 맛을 집으로 가져갈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