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하루의 기적, 빅토리아수련의 개화

2025-09-01     송시영 기자

한여름 밤, 물 위에서 거대한 왕관이 펼쳐졌다. 순백에서 분홍빛으로 바뀌는 단 하루의 기적 같은 꽃이 수면 위를 밝히며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산림청 국립수목원은 습지식물전시회 ‘숨겨진 물속 정원, 습지를 만나다’에서 세계 최대 수련으로 불리는 빅토리아수련이 화려하게 개화했다고 1일 전했다. 단순한 개화가 아니라, 자연이 들려주는 생태 보전의 경고이자 선물이라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빅토리아수련은 남아메리카 아마존 유역을 원산지로 하는 열대 수생식물이다. 지름이 1미터를 훌쩍 넘는 둥근 잎은 작은 아이가 앉아도 견딜 만큼 단단하며, 꽃은 밤에만 피어 하룻밤을 끝으로 지는 독특한 생리적 특성을 지닌다. 이번에 선보인 ‘크루지아나빅토리아수련(Victoria cruziana Orb.)’은 개화 첫날 눈처럼 흰 꽃잎을 피우고, 이튿날엔 분홍빛으로 서서히 물드는 아름다운 색 변화를 보여 ‘수련의 여왕’이라는 별칭이 아깝지 않다. 국립수목원 관계자는 이 변화가 곤충을 끌어들이기 위한 수분 전략임을 소개하며 “자연의 지혜가 담긴 놀라운 장치”라고 설명했다.

국립수목원은 단순히 희귀 수련을 전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번 전시를 통해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보전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습지는 지구 환경을 지탱하는 중요한 생태계이지만 개발과 기후 위기로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를 알리기 위해 전시장에는 빅토리아수련뿐 아니라 가시연꽃, 각시수련, 순채 등 다양한 습지식물이 함께 자리했다. 특히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식물인 가시연꽃은 국내 일부 습지에서만 발견되는 귀한 식물로, 관람객들은 이를 통해 ‘보이지 않는 자연의 보고’인 습지의 가치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

 

빅토리아수련의 꽃과 잎(개화 1일차 오후 6시경)

 

가시연꽃은 이름처럼 뾰족한 가시를 지닌 잎으로 유명한데, 이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진화적 결과다. 국립수목원은 이번 전시에서 가시연꽃의 생태적 특징과 보전 필요성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안내판을 마련했으며, 멸종 위기에 처한 종이 왜 우리 곁에서 사라져 가는지를 이해하도록 돕고 있다. 함께 전시된 순채와 각시수련도 우리 땅 고유의 수생식물로, 습지 생태계의 건강성을 가늠하는 지표종으로 꼽힌다.

 

야간에 활짝 핀 빅토리아수련(오후 9시경)

 

국립수목원 전시교육연구과 배준규 과장은 “이번 빅토리아수련의 개화는 단순한 장관이 아니라 생물다양성과 습지 보전의 중요성을 되새길 기회”라며, “국민들이 직접 보고 체험하는 전시를 통해 자연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보전의 필요성까지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빅토리아수련의 꽃봉오리

 

이번 습지식물전시회는 국립수목원이 올해 특별 기획한 행사로, 8월 31일까지 열대식물자원연구센터 앞 광장에서 열린다. 관람객들은 평소 쉽게 접하기 어려운 열대 수련과 우리 고유 습지식물을 동시에 만나며, 단순한 식물 감상을 넘어 환경 보전의 메시지를 피부로 체감할 수 있다. 한여름의 절정에서 시작된 이 특별한 개화는 자연이 인간에게 보내는 가장 아름다운 신호이자 경고처럼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