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기 신라의 처벌·보고 그날의 기록, 함안 성산산성서 ‘목간’ 최초 확인

2025-08-07     정의식 기자

함안 성산산성에서 또 하나의 역사 퍼즐이 드러났다. 2024년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목간(木簡) 2점의 판독 결과, 6세기 중반 신라의 지방행정과 처벌 시스템을 입증하는 구체적 문서로 밝혀지면서, 고대 한반도 국가 운영 실체에 대한 증거로서 파급력을 더하고 있다.

출토 지점은 물의 침투를 막기 위해 식물 유기물을 차곡차곡 쌓은 부엽 시설 내부. 습기가 강한 환경 덕분에 오히려 나무로 만든 문서인 목간이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었다. 이번에 출토된 두 점은 각각 다면(多面)과 양면(兩面) 목간. 특히 다면 목간은 네 면 중 세 면에 먹으로 작성된 문장이 남아 있으며, ‘감문촌주에게 보고’, ‘모아 죽였다’ 등 구체적 문구가 선명히 드러나며 고대의 행정 보고와 사법 집행 절차를 엿볼 수 있는 실질적 근거를 제공한다.

다면 목간의 첫 번째 면에는 “이월 중 어(於) 감문촌주 등 백(白) 대성…”이라는 표현이 적혀 있다. 감문은 현재 김천 일대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이는 신라 중앙정부 또는 지방 사령부가 감문 지역 촌주에게 상황을 보고하거나 지시한 것으로 추정된다. 3면에는 “□□人身中集煞白之”라는 문장이 등장하는데, “모아 죽였다”고 직역되며, 사건 처리 후 상급자에게 결과를 보고하는 형식을 갖춘 기록임을 뒷받침한다. 이는 단순히 행정 명령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사법적 처벌 이후 행정적 보고를 병행한 고대 공문서라는 점에서 매우 주목된다.

양면 목간은 판독 가능한 문자가 적고 방향 구분이 불명확해 내용 해석에 한계가 있었지만, “作(작)” 혹은 “求(구)” 등의 단어로 보아 제작 또는 요청, 요구에 관한 초기 문서 형태로 추정된다.

이번 목간 판독에서 가장 주목받은 기술은 초분광 영상 분석(Hyperspectral Imaging). 기존의 적외선 분석보다 한층 정밀한 방식으로, 먹의 미세한 흔적까지 복원 가능하게 했다. 수백 개의 파장대를 동시에 분석하는 이 기술은 특히 세월에 바랜 고대 문자의 선명도를 극대화해 판독 정확도를 크게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과거에는 적외선 방식으로 윤곽 정도만 파악 가능했던 문자가, 이번에는 먹의 농도, 필체의 압력, 획 순서까지 예측 가능한 수준으로 구현되었다.

목간의 재료 또한 중요한 단서다. 분석 결과 두 목간 모두 소나무류로 밝혀졌다. 당시 문서 제작에 있어 접근성·가공성·내구성을 고려한 목재 선택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 이로써 신라는 단순 구술 사회가 아닌, 문서 기반의 행정 체계가 자리잡고 있었음을 입증하는 물적 증거가 하나 더 추가된 셈이다.

 

다면목간 초분광 분석 사진

 

이번 출토는 1991년부터 이어진 성산산성의 18번째 정식 발굴조사에서 이루어졌다. 성산산성은 지금까지 총 245점의 목간이 쏟아져 나온, 한국 고대사 연구의 핵심 기지로 꼽힌다. 해당 유적은 신라가 가야 지역을 병합하고 군사·행정적으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신라의 지방지배와 권력 통합 전략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 실마리를 제공한다.

국립가야문화유산연구소는 향후 목간의 보존처리를 전문적으로 진행하는 동시에, 보다 정밀한 필사 분석 및 디지털화 작업을 병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목간들이 단순 유물이 아니라, 고대 동아시아 문명 속에서 신라라는 국가가 어떻게 체계를 갖추고 작동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문서 문명’의 결정적 실체이기 때문이다.

목간에 기록된 '보고', '처벌', '이름', '장소'는 단어를 넘어선 정치의 언어다. 종이에 기록되기 전, 나무 위에 새겨진 글자 하나하나가 1500년의 시간을 뚫고 다시금 말을 걸고 있다. 역사는 유물 속에 숨지 않는다. 목간은 다시,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