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만의 귀환 조선 황실의 보물, ‘나전산수무늬삼층장’ 국가민속문화유산 지정
외국인에게 하사된 조선 황실의 정제된 궁중 가구가, 100여 년의 시간을 건너 다시 한국의 문화유산이 되려 한다. 고종황제가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러에게 하사한 것으로 전해지는 19세기 말 궁중가구 「나전산수무늬삼층장」이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 예고되었다. 이 유물은 단순한 생활가구가 아니라, 조선 후기 왕실의 생활 양식, 장인의 정교한 공예기술, 그리고 조선과 서양의 문화 교류를 상징하는 상징적 유물로 평가된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이번에 지정 예고된 「나전산수무늬삼층장」은 소나무와 자개, 금속으로 구성된 대형 삼층장으로 가로 114.9cm, 세로 54.6cm, 높이 180.3cm의 규모를 갖춘 고급 궁중 가구다. 조선 말기 고종황제가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에게 직접 하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후손이 가문의 유산으로 보관하다가 2022년 배재학당역사박물관에 기증했다. 유물의 전래 경로가 명확하고, 역사적 상징성이 뚜렷해 학술적 평가도 높다.
삼층장은 조선 후기 궁중이나 상류층 자제의 혼례, 출가, 분가 시에 반드시 준비되던 필수 생활가구로, 단순한 수납가구를 넘어 사회적 신분과 권위를 상징하는 품목이었다. 특히 이번에 지정 예고된 나전삼층장은 제작지로 추정되는 경상남도 통영 지역 특유의 장식 기법과 구조 양식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전통 가구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통영은 당시 궁중 공예를 담당하던 주요 지역 중 하나로, 천판의 돌출을 줄이고 전면을 판재처럼 가공하는 평면적 조형미가 특징이다.
정면 전체와 양 측면은 자개를 활용한 산수문, 산수인물문, 귀갑문, 문자, 화훼문양 등 다양한 전통문양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특히 내부 문짝 안에는 화려한 색채의 괴석화훼도가 채색되어 있어, 단순한 외관 장식뿐만 아니라 내부 공간까지 예술성과 기능성을 모두 고려한 제작 수준을 보여준다. 나전 장식에는 끊음질, 주름질 등 고난도의 전통 기법이 총동원되어 당시 장인의 숙련된 손길을 느낄 수 있다.
끊음질은 문양을 따라 자개를 오려 붙이는 방식, 주름질은 실처럼 얇게 가공한 자개를 눌러 일정 간격으로 붙이며 무늬를 만드는 고급 기법으로, 지금은 계승자조차 드문 고도화된 기술이다. 이처럼 「나전산수무늬삼층장」은 공예적 가치뿐 아니라 조선 말기 궁중 가구가 가진 정서적·기능적 미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로서 희소성과 예술적 완성도가 매우 높다.
또한 이 유물은 19세기 말 고종 황제와 서양 선교사 간의 외교적·문화적 관계를 상징하는 역사적 증거물이기도 하다. 아펜젤러는 배재학당을 창립하고 정동제일교회를 설립한 한국 개신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고종이 그에게 직접 하사한 이 삼층장은 조선의 궁중 문화가 외국인 선교사에게 전달된 매우 이례적이고 상징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국가유산청은 30일간의 예고 기간 동안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 지정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향후에도 역사적 가치가 높은 민속문화유산을 적극적으로 조사하고 발굴하여 지정함으로써, 한국 전통문화의 보존과 활용에 더욱 힘쓸 계획이다.
「나전산수무늬삼층장」은 단순한 목가구가 아니다. 그것은 왕실의 기품과 공예의 정수, 문화 교류의 흔적, 그리고 한 외국인 선교사의 삶과 함께했던 ‘시간의 상자’이다. 오늘날 우리가 그것을 다시 마주하는 것은 단지 과거를 회고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금도 잊지 말아야 할 **‘문화의 계승’과 ‘연결’**에 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