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버린 숲, 그 자리에 송이가 자랐다”...산림 복구의 새로운 해답
한때 산불로 잿더미가 되었던 땅에 고급 버섯인 송이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단순한 자연 회복이 아니라 과학기술을 통한 인공 재배의 성과다. 산불피해지 복구와 고부가가치 임산물 생산을 동시에 겨냥한 **‘송이 감염묘 인공 재배 기술’**이 이제 실전 단계에 들어섰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이 최근 대형 산불 피해를 입은 영남권 산림을 대상으로 이 기술의 현장 적용에 착수했다. 이 기술은 송이 균근을 어린 소나무 묘목의 뿌리에 인위적으로 감염시켜 자연 조건에 이식하는 방식으로, 기존의 자연 발생에 의존한 송이 채취 방식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전략이다. 송이는 한국산 고급 버섯으로 kg당 수십만 원에 거래되며, 주기적 생산이 어려워 ‘산속의 금’이라 불리기도 한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지난 수십 년간의 실증 연구를 통해 이 기술의 가능성을 증명해왔다. 대표적 사례는 강원도 고성과 홍천 시험림이다. 고성 시험림은 1996년 산불 피해 이후 조성된 소나무림으로, 2007년 송이 감염묘 27본을 식재한 결과 2023년 첫 송이 5개체가 발생했고, 2024년에는 1개체가 추가로 확인됐다. 17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지만, 인공 감염묘에서도 송이가 자란다는 사실을 확인한 첫 현장 사례로 의미가 깊다.
홍천 시험림은 보다 장기적 데이터를 확보한 곳이다. 1995년 조성된 이 시험림에는 2001년부터 2015년까지 총 192본의 송이 감염묘가 이식됐고, 2010년에 첫 송이가 발생했다. 이후 2017년부터는 8년 연속 송이 발생이 이어지며 지금까지 총 70개체가 관찰되었다. 이는 기술의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을 입증하는 중요한 근거로 평가받는다.
이번 영남권 적용은 단순히 학술적 실험에 그치지 않는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이 기술을 통해 산불피해 복구는 물론, 임업인의 소득 보완 및 산촌 경제의 생태적 복원 기반 마련까지 아우르겠다는 계획이다. 기존의 복구 방식이 나무 심기에 그쳤다면, 이번에는 나무가 버섯을 품도록 유도함으로써 숲의 기능과 경제성을 동시에 살린다는 접근이다. 송이 재배는 일반 임산물보다 수익성이 높고, 인공 감염 기술은 특정 지역에 송이 자생 가능성을 높여준다.
과거 자연 상태에서만 채취 가능했던 송이는 생육조건이 까다롭고 인위적인 재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국립산림과학원은 균근 접종 기술, 감염묘 생육관리법, 적응지 이식 기법 등을 체계적으로 정립해 기존 통념을 뒤집었다. 특히 송이는 소나무 뿌리와 공생하는 특성 때문에 묘목의 연령, 뿌리 상태, 토양 미생물 조건 등이 맞물려야 자생이 가능하다. 이 모든 조건을 맞추는 일은 수십 년의 축적 데이터와 미생물 생태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 기술의 보급을 위해 과학원은 앞으로 지역 주민 대상 설명회와 기술 이전 프로그램도 병행할 계획이다. 마을 단위 시범지를 조성하고, 일정 기간 동안 발생 여부를 관찰하면서 향후 지역 임산물 자원화 가능성을 모색한다. 지역 맞춤형 기술 이전은 단순한 일회성 사업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산림경영 모델로 이어질 수 있는 실험이기도 하다.
산림미생물이용연구과 박응준 과장은 “장기간 축적된 데이터를 통해 송이 감염묘에서 실제 송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검증했다”며 “이 기술이 단순한 실험에서 벗어나 산촌 주민들의 실질적 소득 보완 수단으로 확장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불에 탄 숲이 다시 버섯을 품는 과정. 이는 단순한 자연 복구가 아니다. 시간과 데이터, 미생물학, 그리고 지역 주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회복의 과학이다. 국립산림과학원이 만드는 이 새로운 생태 복원의 방식이 향후 기후위기 시대 산림관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