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한부터 중국까지… 교류의 증거, ‘영암 시종 고분군’ 사적으로 지정
단순한 무덤이 아니었다. 전남 영암의 평야지대에 자리 잡은 고분들은 바다와 내륙을 잇는 전략적 거점이자, 고대 동아시아 문명의 교차로였다. ‘마한의 기억’을 품은 「영암 시종 고분군」이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으로 공식 지정되며, 해양과 내륙을 잇는 교류의 유산으로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국가유산청은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일대에 분포한 「영암 시종 고분군」을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으로 지정했다고 7일 밝혔다. 지정 대상은 시종면 옥야리 장동의 방대형 고분과 내동리 쌍무덤을 포함한 유적지다.
이 고분군은 5세기 중엽부터 6세기 초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서해 바다와 영산강 수계, 내륙 교통망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략적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영산강과 삼포강, 남측 지류가 만나는 이 지역은 당시 해양 교통로의 거점이자 선진 문물이 확산되던 통로였다.
이 같은 입지적 강점을 바탕으로, 마한의 토착 세력은 백제, 가야, 중국, 왜 등과 교류하며 독창적인 문화를 형성했다. 고분의 구조와 축조 방식, 출토 유물은 이 지역이 단순한 변방이 아니라, 고대 한반도와 동아시아 문명권이 충돌하고 융합되던 핵심 지점이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옥야리 장동 방대형 고분’과 ‘내동리 쌍무덤’은 기존 마한의 전통적인 옹관묘에서 벗어나 방형 분구의 석곽묘·석실묘로 진화한 양상을 보여준다. 고분 외곽은 방사형·동심원형의 점토 구획 후 성토하는 구조로 설계되었고, 이는 당대의 치밀한 계획성과 토목 기술 수준을 단적으로 입증한다.
출토된 유물들도 주목할 만하다. 금동관 세움 장식, 토기와 동물형상 토제품, 중국 청자잔, 동남아시아산 유리구슬 등이 발견됐으며, 이는 이 지역이 단순히 외래 문화를 수입한 것이 아니라 현지화 과정을 통해 독립성과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했음을 보여주는 자료다.
영암 시종면 일대에는 총 49개소의 고분이 분포하며, 이 중 28개소가 시종면에 밀집해 있다. 국가유산청은 이번 사적 지정을 계기로 해당 유적의 보존·활용을 위한 종합 계획을 수립하고,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유산 향유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