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도를 돌려 다른 시각으로 보면 - 서울 절두산 ~ 선유도행
해는 강물과 나란히 누워 걸어온 길을 이야기 합니다 매일 매일 같은 길을 걸어도 자꾸 자꾸 할 말이 많은 것이 인생인가 봅니다
바이러스(Virus)는 라틴어의 '비루스'에서 유래합니다. 비루스는 '독성 분비물'이란 뜻입니다. 독성 분비물 대책은 두 가지입니다. 접촉하지 않거나 제압하는 것. 제압하려면 백신이 필요한데 당장 사용할 수가 없으니, 아직 접촉을 줄이려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멈출 수는 없습니다. 이 말은 미국의 문학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의 저서 『숨겨진 차원』에서 소개한 개념입니다.
홀은 인간관계에 따라 거리를 4가지로 구분합니다. 첫째는 '친밀한 거리(~46cm)'로 가족이나 연인 사이의 적정 거리입니다. 둘째는 '개인적 거리(46~120cm)'로 친구와 같은 가까운 지인간의 적정 거리입니다. 셋째는 '사회적 거리(120~360cm)'로 업무나 사회생활을 할 때 유지하는 적정 거리입니다. 넷째는 '공적인 거리(360cm~)'로 연설, 강연, 공연 등에서의 청중(관객)과의 적정 거리입니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하여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는 것은, 사람의 비말(飛沫 - 기침 등으로 날아 흩어지거나 튀어 오르는 물방울)이 튀는 거리(약 2m)를 감안한 것입니다.
상황이 장기화 되면서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도 생겼습니다. 코로나19와 우울함(Blue)을 합성한 말입니다. 전염병 전파에 따른 사회활동 위축 등으로 인한 우울감을 말합니다. 봄이 왔다고 꽃내가 자랑질 하고 싶어 난리치는데 골방에서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릴 수 없는 노릇입니다.
한강에 나오자 파란 하늘에선 토실토실한 흰 구름이 맑디맑은 햇빛을 받으며 눈부신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반짝이는 물비늘 벗 삼아 강물처럼 흘러갑니다. 둔치에 봄까치꽃이 꽃방석을 깔았습니다. 마포나루터를 지나 양화진 나루터에 왔습니다. ‘양화'는 버들꽃을 말합니다. 갯버들 피는 아름다운 강변의 나루터입니다. 조선 시대 양화나루는 강화로 가는 관문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한양과 강화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였으며, 병선과 병선의 훈련장도 있을 만큼 중요한 군사적 기지이기도 했습니다.
이곳에 잠두봉 유적지가 있습니다. 잠두봉이란 이 암봉이 가을 녘 누에의 머리 모양을 닮아서 부른 이름입니다. 20여 미터 암벽 위에는 교회가 있는데 절두산 순교 성지라고 합니다. 절두산이라 불리게 된 것은 1866년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이 참수 당하여 순교하였기 때문입니다. 머리가 잘린 곳이란 뜻입니다. 이곳에서 몇 명이 순교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최소한의 재판도 없이 먼저 처형한 후 보고하였기 때문입니다. 기댈 곳 없는 민초들의 간절한 신앙마저도 용납하지 못한 옹졸한 권력의 말기 증세, 그것은 잔인한 학살이었습니다.
양화대교 중간쯤에 선유도가 있습니다. 예전에 선유봉이 있던 수려한 경치였다고 합니다. 이후 정수장이 들어왔는데, 서울의 확장 속도를 감당할 수 없어 결국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기능을 다한 정수장 시설은 폐허로 남아있었습니다. 그런데 콘크리트 시설을 공원으로 만들어 시민에게 돌려주자는 아이디어가 폐허처럼 남아 있는 콘크리트 시설을 공원으로 탈바꿈 하게 만들었습니다. 파괴와 철거만이 새로움을 창조하지는 않나 봅니다. 기존 있는 것, 심지어 폐허마저도 각도를 돌려 다른 시각으로 보면 새로운 창조가 생겨나기도 하는가 봅니다. 창의문 앞 수도 가압장 폐허 시설물이 윤동주문학관으로 재탄생 하였듯이. 포천 천주산의 버려진 광산 자락이 아트벨리로 멋지게 새로 태어나듯이.
양화대교에서 노을을 만났습니다. 서울의 해는 강에서 떠올라 강으로 집니다. 이제 해는 강물과 나란히 누워 걸어온 길을 이야기 합니다. 매일 매일 같은 길을 걸어도 자꾸 자꾸 할 말이 많은 것이 인생인가 봅니다. 일상의 반복 같은 날들이라고 어찌 매일 매일 같을 수가 있으랴. 그러기에 걸어온 오늘 이 길이 추억이 되고, 내일의 이야기가 궁금해지고 기다려지는 것인가 봅니다. 선유도를 거쳐 여의도 샛강 길을 걸어 집으로 갑니다. 뒤에선 아직도 강과 해의 정겨운 이야기가 귓전을 두런두런 스치는데.
서울의 해는
강에서 떠올라 강으로 진다
강물에 노을을 깔고
강과 해는 나란히 앉아
걸어온 길을 이야기 한다
매일 매일 같은 길을 걸어도
자꾸 자꾸 할 말이 많단다
일상의 반복 같은 날들이라고
어찌 날마다 할 얘기가 없겠는가
오늘 이 길에서 추억 하나 놓았으니
내일은 또 어떤 일이 더해질까
살아간다는 것은
언제나 새로움의 여정
궁금하고 설레는 기다림
(졸시,「서울의 해」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