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찍힐 수 있다면, 누구나 지켜져야 한다”, 안내판 없이 CCTV 설치? 과태료 폭탄

2025-06-17     이혜숙 기자


CCTV 시대, 개인정보 보호는 선택이 아닌 의무

주차장, 식당, 병원, 아파트, 학교…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무심코 CCTV 앞을 지나친다. 범죄 예방과 시설 보호를 위해 설치된 이 장치는 어느새 일상을 감시하고, 사적인 순간까지도 기록하는 존재가 됐다. 그런데 이렇게 편리한 CCTV가, 오히려 개인정보 침해의 주요 원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따르면 최근 몇 년간 CCTV 관련 침해 신고는 매년 수백 건에 이른다. 2023년에는 520건, 2024년에도 342건이 접수됐다. 대부분은 안내판 미설치나 영상정보 열람 거부 같은 비교적 단순한 사안이었다. 문제는 이런 ‘작은 실수’가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법적 처분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이에 개인정보위는 CCTV 설치·운영 시 반드시 지켜야 할 ‘3대 행동수칙’을 발표하고, 관련 내용을 담은 포스터를 제작해 유관 협단체에 배포하기로 했다. 6월 중 배포 예정인 이 포스터는 공동주택, 상가, 병원, 학교 등 CCTV가 많이 설치되는 장소의 관리자를 대상으로 한다. 캠페인은 연말까지 이어질 계획이다.

행동수칙의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사생활이 우려되는 비공개 공간에는 CCTV를 설치하지 말 것. 둘째, 공개된 장소라도 CCTV 설치 시에는 반드시 안내판을 부착할 것. 셋째, 촬영된 개인이 열람을 요청할 경우 10일 내에 대응할 것.

 

 

현장에서는 이미 법 위반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한 병원은 회복실에 CCTV를 설치했다가 실제로는 환자가 탈의하는 공간으로 사용되어 과태료 300만 원과 시정명령을 받았고, 한 고등학교는 화장실 내부가 찍히도록 CCTV를 설치해 500만 원의 과태료와 공표 처분을 받았다.

또, 안내판 부착을 하지 않거나 필수 정보를 누락한 사례도 빈번하다. 상가 엘리베이터에 CCTV를 설치한 뒤 ‘촬영 중’ 표기는 했지만, 관리 책임자 정보와 촬영 범위를 명시하지 않아 처분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

가장 최근 급증한 문제는 영상 열람 요구에 대한 부적절한 대응이다. 실제로 2024년에는 열람 관련 침해 신고 비율이 53.5%로 전체 신고 중 가장 높았다.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주민의 영상 열람 요청에 “경찰 신고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거부해 39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받았다. 또 한 호텔은 고객이 물품 훼손 당시 영상을 요구하자, 타인이 함께 촬영됐다는 이유로 별다른 조치 없이 거절해 120만 원 처분을 받았다. 타인이 촬영된 영상의 경우, 모자이크나 종이로 가리는 등 조치 후 열람 제공이 가능함에도 이를 무시한 것이다.

개인정보위는 “CCTV는 공공의 안전을 위한 장치인 만큼, 설치자 역시 법적 책임과 사회적 역할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아파트, 병원, 음식점 등 일상 공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생활 침해를 최소화하고, 영상정보 요구에 성실히 대응해야 불필요한 갈등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제는 단순히 ‘찍지 않으면 된다’는 시대가 아니다. 누구나 찍히는 시대라면, 누구나 지켜져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CCTV는 감시가 아니라 보호의 도구여야 한다.